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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허남진 칼럼

김정일 깜짝쇼의 꿍꿍이속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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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현상 유지(status quo)’다. 남북 통일을 바라지 않지만 긴장이 고조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평화 상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한반도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이 점증한다면 가장 바람직한 상황일 것이다. 다만 미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천안함 사태는 바로 미국의 입김을 키웠다는 점에서 중국으로선 못마땅하다. 비록 유엔 안보리 등에서 북한 감싸기에 나섰지만 남북 긴장이 에스컬레이트되는 것은 중국 외교·안보 정책의 기본 틀에 어긋난다.

결국 중국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6자회담 복원이다. 그러나 천안함 사태는 한·미·일로 하여금 6자회담 재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한·미·일을 끌어들이려면 천안함을 뛰어넘는 획기적 방안이 나와야 한다. 유일한 카드는 북한 핵이다. 우다웨이의 분주한 행보는 모종의 진전된 북핵 해법을 확보했다는 방증일 것으로 일부 전문가는 보고 있다.

이 경우 중국은 북한에 상당한 선물을 줘야 한다. 북한의 식량난은 심각하다. 올 부족분만 130만t이다. 얼마 전 수해까지 겹쳤다. 9월 초엔 44년 만에 열리는 당 대표자회가 기다리고 있다. 사정이 보통 급한 게 아니다. 지난 5월 방중 당시 김정일은 100억 달러와 기름 100만t 지원을 요청했으나 중국은 그중 일부만 약속했다고 일본 도쿄신문이 보도했다. 어쩌면 중국은 이번에 그 요청을 전면 수용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이 중국 측에 핵 해결 방안을 직접 다짐하고 지원을 약속 받는 그림이라면 김정일의 깜짝 방중이 어느 정도 설명될 수 있다.

물론 김정일의 깜짝쇼가 실제 그런 희망적 국면으로 이어질지는 점치기 어렵다. 모든 게 베일에 가려져 있어 긍정적 해석을 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유념할 대목은 그 가능성이다.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그런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말이다. 독일 통일 역시 예고 없이 도래하지 않았는가. 그에 대비해야 하는 것은 기본 중 기본이다.

이명박(MB) 대통령은 취임하며 대북정책으로 ‘비핵·개방·3000’을 제시했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 정책을 펴면, 현재 200~300달러 수준인 북한 주민의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로 끌어올리도록 대대적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당장 비핵·개방을 한다면 MB는 지원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 예산 중 대북 지원에 쓸 수 있는 자금은 남북협력기금뿐이다. 올 책정분은 1조원 남짓. 현재까지 사용한 3%를 제외한 나머지를 몽땅 집어넣어도 턱없이 부족하다.

바로 그 때문에 MB의 8·15 ‘통일세’ 제안이 돋보이는 것이다. 당시엔 ‘설익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MB는 초선 의원 시절 획기적인 화해·협력의 대북정책을 제시한 바 있다. 그걸 기억한다면 이번 제안을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아무런 구상이나 상황 판단 없이 불쑥 던진 초벌구이라고 보면 오산일 수 있다.

북한의 급변사태든, 남북 화해기조에 입각한 협력 차원이든 결국 막대한 자금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MB의 통일세는 그 자금 조달 방안이다. 시기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필요한 자금이다. 피할 수도 없다. 대통령이 그 자금마련 방책을 외면한다면 그게 오히려 직무유기다.

MB의 제안은 ‘매년 예산의 1%를 북한 기금으로 적립하자’는 중앙일보 캠페인과 맥을 같이한다. 양쪽 모두 통일 과정에서 큰돈이 필요할 때에 대비해 비축하자는 취지다. 북한 주민을 위한 긴급구호, 인프라 구축, 새로운 차원의 경협 등에 최소한 연 3조원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계산이다. 300조원으로 추산되는 내년 예산의 1%면 3조원이다. 평화 정착과 통일을 위해 불가피하게 부담해야 할 액수인 셈이다.

김정일이 만주 벌판에서 벌이는 깜짝쇼가 어떤 바람으로 둔갑해 한반도에서 요동칠지 현재로선 예측하기 어렵다. 이런 불가측성이야말로 단단한 대비책을 세워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허남진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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