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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 학사모 함께 쓴 시각장애인과 안내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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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김경민씨와 미담이가 25일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태성 기자]

25일 오전 11시 숙명여대 대강당. 시각장애인 김경민(22·교육학과)씨가 졸업식 단상에 올랐다. 문과대학 대표로 졸업장을 받기 위해서였다. 안내견 미담이도 함께 올라왔다. 김씨는 평점 4.3 만점에 4.19를 받고 7학기 만에 조기 졸업하는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대학 생활 내내 김씨의 ‘눈’이 돼 줬던 미담이도 숙명여대의 상징인 파란색 학위복을 입고 학사모를 썼다. 의류학과 학생들이 미담이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 준 학사모였다. 김씨는 “미담이 덕분에 대학 생활을 무사히 끝냈다”며 “오늘 이 자리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미소 지었다. 김씨가 미담이를 만난 것은 2007년 2월. 국립서울맹학교에서 초·중·고를 다닌 김씨는 홀로 서기를 위해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에 맹인 안내견을 신청했다. 이곳은 안내견을 훈련시켜 시각장애인들에게 무료로 연결해 주는 공익사업을 하고 있다. 훈련사들은 밝고 명랑한 미담이를 김씨에게 분양해 줬다.

처음에 김씨는 키 55㎝에 몸무게 26㎏의 큰 개가 자신에게 달려와 점프를 하고 얼굴을 핥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나 점점 김씨도 미담이의 적극적인 면을 닮아 가기 시작했다. 그는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거는 게 쑥스러워 엘리베이터를 타도 내려야 할 층에 못 내리거나 강의실을 못 찾는 경우가 있었다”며 “미담이를 덜 고생시키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행동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공부도 열심히 했다. 비록 장애가 있었지만 뒤처지기 싫었다. 장학금을 받아 치킨집을 운영하는 부모님에게 보탬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인터넷이나 책 등을 통해 참고 자료를 풍부히 찾을 수 없어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미담이와 본인이 체험한 이야기를 응용해 써 낸 경우가 많다. 그는 “짜깁기를 할 수도 없고, 모든 것이 제 머릿속에서 나와야 하니 다른 학생들보다 더 많이 생각해야 했다”며 “교수님들이 창의적인 답안을 좋게 평가해 주신 것 같다”고 했다.

영어교사가 되고 싶은 김씨는 10월에 임용고사를 볼 계획이다. 미담이와 함께 교단에 서서 비장애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그의 꿈이다.

글=김효은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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