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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봉사단 안다미로

중앙일보

입력


강남 아이들이라고 공부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강남 엄마들이라고 아이들의 성적에만 관심 있는 게 아니다. 아이 교육 때문에 시작한 ‘봉사’가 이제는 가족을 더욱 사랑하게 하는 ‘행복’으로 되돌아왔다는 강남 지역 가족 봉사단 ‘안다미로’를 만났다.

“쿵쾅 쿵쾅” “영차 영차”

끙끙대며 돌과 바닥재를 나르고 난생 처음 삽질도 해봤다. 더운 날씨에 연신 땀이 흐르고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지만 냉수 한 잔, 새참으로 나온 수박 한 조각에 더위를 잊는다.

한창 공부해야 할 고등학생들이 엄마와 함께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지난달 31일,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장애인 복지시설 ‘한울 공동체’의 풍경이다. 최근 불이 나 엉망이 된 시설들을 복구하기 위해 가족 봉사단인 ‘안다미로’가 팔소매를 걷어붙인 것이다.

‘차고 넘치도록 풍부하다’라는 뜻의 순우리말인 안다미로는 압구정·신사·반포 일대의 엄마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가족 봉사 동아리다. 현대고·세화여고 학생들이 중심이며 초·중학생들도 활동하고 있다. 현재 구성원은 총 19가족. 2008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2009년 4월에는 강남구 자원봉사센터에 정식으로 등록했다.

초대 어머니 회장인 최은미(50·강남구 신사동)씨는 “처음엔 아이들을 따라다니면서 조금씩 챙겨줄 생각이었는데 막상 나가 보니 아이들과 엄마의 역할이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가족 단위의 봉사활동은 다양한 시설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 더없이 적합한 형태”라고 강조했다. 아이들은 식사와 놀이·학습 등을 돕는 정서 교류 활동을 하고 엄마들은 청소나 빨래 등 생활적인 도움을 준다.

안다미로는 장애인 복지시설과 탈북자 청소년 돕기, 영유아보호소 봉사 등 정기적인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맨 처음 인연을 맺은 곳은 장애인 복지시설인 ‘사랑의 쉼터(강동구 상일동)’. 장애인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아이들에게 거부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3년째 교류가 이어지면서 이젠 지적 장애가 있는 아저씨가 몸을 기대오면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고, 손을 사용하기 어려운 아이들에겐 숟가락을 대신 들어주기도 한다.

봉사는 아이의 마음을 녹인다

임신영(46·강남구 압구정동)씨는 가족봉사의 최대 수혜자는 자신이라고 말한다. 임씨는 사춘기 때문인지 부쩍 말수가 적어지고 다가가기 힘들었던 딸 김연성(18·현대고2)양 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가족 봉사활동 모임에 가입하고 왔다는 엄마의 말에 “그런 걸 뭐 하러 해”라며 짜증을 내던 연성이었다. 임씨는 “처음 두 번은 딸 없이 혼자 봉사활동을 갔다”며 “세 번째 봉사하는 날 부터 따라 나서더니 이젠 ‘사랑의 쉼터 언제가?’라고 먼저 챙긴다”고 흐뭇해 했다.

김양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밝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장애우들이나 탈북 청소년들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배운다

연말과 어린이날이면 탈북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인 ‘한민족학교(양천구 신정동)’를 찾는다. 탈북자 아이들을 처음 접했을 때는 대화가 원활하지 못했다. 하지만 방문 횟수가 늘어나면서 같이 뛰고 장난치고 웃는 장난꾸러기 또래 친구가 됐다.

탈북 아이들에 대한 호기심 어린 주변의 시선에 안다미로 아이들은 “살던 곳이 다르고 교육만 다르게 받았을 뿐, 다를 게 하나 없는 똑같은 아이들”이라고 답한다. 이민지(18·현대고2)양은 장애우들을 보는 시선 자체가 달라졌다. “왜 사람을 ‘장애’를 기준으로 장애인·비장애인으로 나눠 불러요? 그냥 똑같은 사람인데…. 조금 아픈 것 뿐이에요.”

아이가 봉사활동에 너무 신경을 쓴다고 생각될 땐 엄마들은 이내 계산적이 된다. 그럴때마다 아이들은 “대학갈 때 점수 더 따려고 하는 거 아냐. 내가 행복해서 하는 거야”라고 답한다. 봉사하는 모습이 예뻐서 사진을 찍을 때면 “우리가 봉사하러 왔지 사진 찍으러 왔냐”며 엄마의 카메라 든 손을 무안하게 하기도 한다.

김혜령(47·강남구 압구정동)씨는 “궂은일에도 찡그리지 않고 열심히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엄마들이 오히려 감동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 밖의 우리 지역에는 …

강남구에 안다미로가 있다면 송파구에는 ‘누리봄 봉사단’이 있다. 2007년부터 꾸준히 봉사활동을 이어와 현재 13가족이 활동 중이며 매월 거여동 소재 복지시설인 ‘신아 재활원’을 찾는다. 텃밭을 가꾸고 시설 청소를 하는 등 엄마와 아빠, 아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장애우들과 교류하면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한편, 서초구자원봉사센터는 가족봉사를 활성화하기 위해 매년 여름 가족봉사 캠프를 개최해왔다. 시골에 가서 일손을 돕고 마을 환경 정비 활동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데 매년 참가 신청이 쇄도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사진설명]지난달 31일, 가족 봉사단 ‘안다미로’가 최근 화재를 당한 장애인 복지시설 ‘한울 공동체’의 ‘사랑의 집짓기’에 참여하고 있다.

< 하현정 기자 happyha@joongang.co.kr / 사진=최명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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