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에베레스트에 묻힌 동지들 고국서 편히 잠들어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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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먼 원정대'의 엄홍길 대장(앞)과 대원들이 22일 선배 산악인 고상돈씨의 추모지를 참배하고 있다.제주=오종택 기자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히말라야 등반을 함께 했던 동지들입니다. 시신이라도 수습해 고국에 눕힐 수 있도록 대자연이 허락해줬으면 합니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등정길에 숨진 동료 산악인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오는 3월 현지로 떠나는 '휴먼 원정대'(중앙일보 2004년 12월 24일 W5면 보도)의 엄홍길(44) 대장은 비장한 각오로 이렇게 말했다.

엄 대장을 비롯한 원정대원 10명은 23일 한라산 용진각대피소(해발 1507m)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원정에 대비한 훈련에 돌입했다. 대원들은 27일까지 하루 8~10시간씩 험준한 계곡.암벽지대를 누비며 시신과 장비를 안전하게 옮기는 훈련을 하게 된다. 며칠 간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던 한라산은 히말라야의 설원과 혹한을 방불케 해 훈련지역으로는 적격이라고 엄 대장은 말했다.

원정대의 목표는 지난해 5월 에베레스트에 오르다 숨진 대구 계명대 산악회원 백준호(37).박무택(35).장민(26)씨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이지만 가능성은 미지수다. 박씨의 경우 8750m 암벽 구간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나머지 두명은 정확한 위치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엄 대장은 "어제(22일) 대원들이 성판악을 거쳐 한라산 정상에 올라 산신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어 한라산 1100고지에 있는 한국인 첫 에베레스트 등정자 고상돈(1948~1979) 선배의 추모지를 찾아 우리의 간절한 소망을 빌었다"고 말했다. 숨진 백씨 등과 함께 히말라야를 원정했던 산악인 6명에 계명대 산악회 후배 4명으로 구성된 원정대는 2월 말 설악산에서 다시 1주일여 훈련한 뒤 3월 원정길에 오른다.

이번 원정이 성공하면 세계 산악사엔 또 하나의 새로운 기록이 쓰여지게 된다. 2001년 영국의 원정대는 23년 에베레스트 등정길에 행방불명됐다가 이후 주검으로 발견된 말로리 어빈의 시신을 수습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제주=양성철 기자 <ygodot@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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