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수교 18주년, 한·중 관계를 생각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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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한·중 교역 규모가 미·일과의 교역 총액을 합친 것보다 많고, 우리나라가 거둬들이는 무역수지 흑자의 대부분을 중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을 정도다. 1990년대 이후 한국 경제가 고도성장세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 중 하나도 중국 시장을 효과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중국과 대립각을 세웠던 대만과 일본은 90년대 이후 오랜 기간 경제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관계 정상화 초기에는 중국이 ‘정경 분리’ 원칙 아래 한국과 경제 관계 발전에 치중하고 정치·안보 관계 발전에는 소극적 태도를 보였으나 상호 경제·문화 교류가 확대되고 정치적 신뢰가 쌓이면서 한·중 관계를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거쳐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키는 데도 합의했다. 양자 관계를 넘어 지역 및 세계 차원에서도 협력을 추진하고, 고위급 전략대화체제를 가동해 정치적 신뢰를 증진하고, 대외 정책과 국제 정세에 대한 소통을 강화해 왔다. 북한 핵 문제와 외교안보 문제 해결 과정에서 한·중 사이에 긴밀한 협력체제가 가동됐고, 양국 국민의 상대방에 대한 호감도 역시 높은 수준으로 유지됐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국익이 우선시되는 국제 관계에서 협력과 갈등이 병존하는 것은 냉엄한 현실이자 진리다. 한·중 관계에서도 교류 협력이 확대되는 한편 갈등 요인들이 부각되는 형국이다. 한·중 관계가 우호적이었던 2000년 중국산 마늘 수입 문제로 인해 무역마찰이 발생했고, 2004년에는 중국의 ‘동북공정’ 추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심각한 갈등이 빚어졌다. 그러나 이들 갈등이 양국 관계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수준까지 악화되지는 않았다. 한·중 사이에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강화하려는 진지한 의지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한·중은 단기간 내에 치유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갈등을 겪고 있다. 북한 문제와 한·미 동맹 강화로 인해 양국 관계에 예사롭지 않은 파열음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 일각에서는 북한이 한국과 국제사회에 대해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는 이유는 중국의 무책임한 태도 때문이라며 ‘중국 때리기’에 열을 올리고, 천안함 피격사건의 분풀이를 중국을 향해 토해 냈다.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남중국해 제해권 장악을 둘러싸고 미국과 대립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19세기 서방의 함포 위협으로 반식민지 상태에 처했던 중국의 아픈 역사를 고려하지 않고 베이징(北京) 앞마당에 미국 핵 추진 항공모함을 진입시켜 미·중 갈등을 고조시키려 한다는 의도로 읽혀졌을 수도 있다.

북한 문제와 한·미 동맹 문제는 향후에도 한·중 관계 발전에 장애물이 될 전망이다. 첫째로는 경제난과 체제 불안으로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할 가능성 때문이다. 당분간은 북·중 동맹 관계가 존속될 것이고, 북한 급변사태 시 중국으로부터 긴밀한 협력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 둘째로는 미·중 간 세력 전이(轉移) 과정에서 대립 양상이 심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이 심화될수록 중국은 안보 전략적으로 북한을 중시하게 될 것이고,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2000년대 초반 중국·대만 관계에서처럼 중국이 경제·무역 관계를 한국과의 관계에 지렛대로 사용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에 중국은 최대 교역국가로서 경제적 공동 번영을 위한 협력 상대이며, 북한 핵 문제와 북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긴밀히 협조해야 할 중요한 동반자다. 중국에 있어 한국 역시 핵심 교역 국가이자 지역 및 세계전략 차원에서 협력을 강화해야 할 상대다. 양국이 당면한 갈등을 지혜롭게 극복하고 양적으로 신장된 관계를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켜 나가야만 하는 이유다. 한·중 관계 발전의 물줄기를 역행시키는 것은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

천안함 사건과 미 항모 서해 진입 문제로 인해 조성된 한·중 간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고 관계 발전 추세를 지속시켜 나가기 위해 거국적 차원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는 한·미 동맹을 강화하면서 중국을 겨냥하는 인상을 주지 말아야 한다. 미·중 갈등구조 속에서 지혜롭고 세심한 동맹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중국이 우리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상대해 줄 것이며, 북한 문제에 대한 중국의 협력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9월 초 실시 예정인 한·미 서해 연합군사훈련에 미 항모를 참여시키지 않기로 결정한 데 대해 중국이 긍정적으로 해석할 것으로 보여 다행스럽다.

언론매체 역시 무절제한 ‘중국 때리기’보다는 독자들에게 중국의 실상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중국과의 호혜 관계 강화 방향을 제시하는 데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한·중 관계 발전은 한·미 동맹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경제 및 안보 이익에 선택지가 아니라 필수사항이 됐다. 연간 교역 규모 2000억 달러, 인적 교류 500만 명 시대에 상응하는 정치·안보적 신뢰 관계가 구축되기를 기대한다.

신상진 광운대 교수·중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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