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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언제까지 잡탕식 세제 개편을 반복할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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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올해 정부의 세제(稅制) 개편안 윤곽이 드러났다. 고용 창출·서민생활 안정·지속적 경제성장, 그리고 재정 건전화 등 크게 4대 목표로 요약된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서민을 위한 일자리 창출이다. 기업의 중요한 세제지원이던 임시투자세액공제 제도가 폐지되고, 일자리를 창출한 기업에만 혜택을 주는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 제도가 도입되는 게 대표적이다. 반면 대기업과 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과세는 강화된다. 미용 성형·애견 진료비 등에도 부가가치세를 물리기로 했다. 조세 분야에도 정부의 ‘친서민 노선’을 관철하기 위한 의도라 할 수 있다.

2008년 세제 개편은 감세(減稅)가 핵심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처하려면 경기부양이 다급했다. 2009년엔 증세(增稅)에 방점이 찍혔다. 그리스 재정위기 이후 재정 건전성이 강조된 것이다. 올해 세제 개편안의 가장 큰 특징은 현상 유지다. 굵직한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제도와 종합부동산세의 지방세 전환 같은 핵심은 건드리지 못했다. “종부세를 국제적 과세 원칙에 따라 재산세로 전환하겠다”는 약속이 번번이 정치논리에 밀려나고 있다.

가장 아쉬운 대목은 중장기 비전의 실종이다. 올해는 경기 회복에 힘입어 세제 개편의 원년(元年)으로 기대됐다. 지난해 정부도 “경제가 정상궤도에 진입하면 본격적인 세제 개혁에 착수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정부는 올해 일몰(日沒)이 돌아오는 50개의 비과세·감면제도 가운데 친서민 항목만 골라내 절반 이상을 연장시켰다. 이런 한시적 제도는 과단성 있게 정비하지 않으면 영구화·기득권화된다. ‘넓은 세원과 낮은 세율’이라는 우리 사회의 중장기적 합의와도 동떨어진 일이다.

물론 어떤 세제도 경제현실과 따로 놀 수는 없다. 세제에 정책 의지가 반영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세제 개편이 자꾸 지나치게 단기적 안목으로 진행되는 것은 문제다. 올해도 정부는 재정 건전성과 친서민이라는 서로 충돌하는 개념을 내세웠다. 당연히 세제 개편의 줄거리가 꼬일 수밖에 없다. 이 정부 들어 ‘잡탕식’ 세제 개편이 3년 연속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중장기적 세제 개편의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모든 경제 주체들이 공감하는 세제 개혁의 대원칙이 흔들리지 않아야 포퓰리즘이 발을 붙이지 못한다.

우리 사회는 저출산·고령화·통일 같은 구조적 문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중장기적 세제 개편이 이런 난제들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매년 미시적인 세제 개편으로는 재정 건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 긴 안목에 따라 근본적인 세제 개편에 나서야 머지않아 닥쳐올 암울한 미래를 피할 수 있다. 언제까지 잡탕식 세제 개편에 머무를 수 없는 노릇이다. 중장기적 세제 개편이 절실하다. 길게 보면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국가적 과제는 근본적 세제 개편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