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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지을 거면 제대로 설계해 짓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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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보통 건물의 공사비는 단위면적 3.3㎡당 최고급 1000만원 이상, 고급 700만원 이상, 중급 500만원 이상, 하급 300만원 정도로 나뉜다. 그에 따르는 건축설계비는 기획재정부의 정부예산편성지침이나 건축사협회의 요율에 의해 건축공사비의 3~5%(공사비 100억원 이상) 또는 5~10%(공사비 100억원 이하)로 산정된다.

연면적 1만2000㎡의 건물을 짓는다고 하자. 건물의 용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건축공사비는 최고급일 경우 400억원, 고급 300억원, 중급 200억원, 하급 120억원 등 차이가 난다. 공사비는 외장 재료, 냉·난방시스템, 인텔리전트 시스템의 유무, 내부 마감재료 등에 따라 달라진다. 이때 건축사협회의 요율에 따른 건축설계비는 각각 20억원, 15억원, 10억원, 5억원이 된다.

문제는 현재 통용되고 있는 건축설계비가 이러한 기준의 절반 정도로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건축설계비에 대한 인식은 거의 후진국 수준에 불과하다. 건축설계비를 깎아 인테리어 공사에 쏟아부어야 건물의 가치를 더 높인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모든 건축물은 그 지역의 문화를 형성하는 공공성을 지닌다. 문화적 가치와 더불어 도시의 경쟁력을 이끌어 가는 건축의 힘을 한국의 건축주들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다.

건축공사는 점점 고급화되는 추세다. 예전에는 깎고 깎아서 최소의 공사비로 건물을 지었다면, 지금은 좀 더 멋진 디자인을 위해 많은 공사비를 쓴다. 의미 있는 한끼의 식사를 위해 분식점에서 고급 레스토랑으로 이동 중에 있다는 거다. 작품성이 높은 유명 건축가들에게 설계를 맡기는 사례가 늘어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이는 건축이 단순한 기능적 시설에서 사회의 문화적 가치를 상승시키는 출발점에 섰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 건축설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공사비의 증가가 꼭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지방자치단체의 호화 청사 건설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엄청난 공사비도 문제지만, 정말 가치 있는 데 투자했느냐는 게 중요한 포인트다. 엄청난 공사비와 규모, 대규모 시설, 이런 게 정말 필요한가 하는 의구심이 제기된 것이다. 한마디로 돈을 엉뚱한 데 썼다는 얘기다. 건축은 한 나라의 문화적 가치를 결정하는 측면이 있다. 이를 위한 건축공사비의 상승도 무시할 수 없다. 문제는 공사비를 얼마나 가치 있게 쓰느냐다.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는 역사적인 건축물들은 그 시대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최대의 건축공사비를 들였을 게 분명하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로마의 콜로세움, 파리의 에펠탑,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런던의 테이트모던 미술관….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지닌 이들 건축물이 안겨주는 경제효과도 엄청나다. 쓰러져가는 폐광촌 빌바오를 살린 구겐하임 미술관은 5000억원의 공사비를 썼지만, 개관 2년 만에 공사비의 세 배에 이르는 수익을 올렸다. 지금은 연간 1500억~2000억원의 수입을 내며 지역경제를 이끌고 있다.

이제 한국의 국가적 위상에 비춰 세계적인 현대 건축물들이 지어질 만한 시점에 왔다. 그런 건축물은 국가 이미지를 확고히 하는 효과가 있다. 이를 위해선 제대로 설계하고, 제대로 공사비를 쓰는 법을 알아야 한다.

이한종 건축가, 스튜디오 이일공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