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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0의 불안과 기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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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세모(歲暮)의 화두는 여전히 극적으로 끝난 대선이다. 2030세대의 노풍(盧風)에서 부터 인터넷이 주도한 선거문화의 혁명, 세대교체의 바람과 선거 전날의 해프닝에 이르기까지 송년회의 안주거리는 푸짐하다.물론 노무현(盧武鉉)대통령당선자가 실시할 개혁정치에 대한 담론도 빠뜨릴 수 없다. 안정과 균형을 저버리면 안된다는 바람에서부터 과감한 개혁을 역설하는 목소리까지 선거전만큼이나 열띠다.

그러나 어쩌다 50∼60대가 주류를 이루는 모임에 가면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5060세대가 받은 충격이 의외로 상당히 컸던 것 같다. 세대교체 속에 20년을 잃어버렸고,인터넷 문화에서도 소외됐으니 머지않아 폐기처분될 신세라고 푸념한다. 속절없이 지나가는 세월의 허망함 속에 자신들의 아성이던 정치적 선택권마저 잃게 됐으니 당연한 푸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금도 내지 않는 2030에 밀려 사회주의가 스며든다고 흥분하는 5060이 적지 않다.

불안과 우려는 단순히 5060에만 그치지 않는다. 기업인들은 물론 의사와 변호사 등 전문직들도 어딘가 모르게 불안해하는 것 같다. 최근 구성된 인수위원회의 면면을 보며 불안감이 더 확산됐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 역시 2030과 5060의 차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아니면 해묵은 보수와 진보의 논리로 묻어 버릴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이제는 5060도 국민통합을 외치던 당선자가 가장 먼저 챙겨야 할 소외계층(?)이 돼 버렸다. 부표를 던진 46%의 목소리도 여기에 숨어 있지 않겠는가.

과연 무엇이 5060을 그렇게 불안하게 만드는 것일까? 정치개혁은 세대를 불문하고 1080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사류정치를 일류로 변신시키자는 데 누가 박수를 보내지 않겠는가. 아무리 과감한 개혁도 충분치 않을 것이다. 가장 큰 우려는 오히려 분배지향적인 경제철학에서 비롯되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공약에도 불구하고 시장자율보다는 규제와 관치의 '보이는 손'이 오히려 기업환경을 더 악화시키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다. 나아가 분배와 복지에 대한 국민의 욕구를 바탕으로 저효율의 형평지향적 사회가 등장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섣부른 개혁의 시도로 계층 간의 갈등과 노사관계가 더 악화될 수도 있다. 진보적인 학자 중심의 인수위가 현실감각이 미흡한 학문적 이상에만 치우치지 않겠느냐는 걱정도 많은 것 같다.

국민통합과 경제안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런 불안들을 말끔히 씻어내야만 한다. 이것은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정권 초기에 가장 경계해야 할 유혹은 역시 인기와 여론에 편승한 개혁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 선택은 인기에 크게 좌우된다. 그러나 경제는 인기있는 정책일수록 사회적 비용이 큰 경우가 많다. 분배와 후생을 늘리자는 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인기로 치자면 주5일보다는 주4일 근무가 더 좋다. 숫자가 많은 소액주주의 권한 강화도 항상 인기있는 메뉴의 하나다.

이런 이유로 재벌개혁도 경제논리보다 정치논리가 앞설 때가 많다. 그러나 시장은 열려 있고, 치열한 경쟁 속에 세계 각국이 기업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업제도의 선진화 못지않게 노사관계와 규제정책도 과감히 경쟁국 수준으로 개혁돼야 한다. 또한 서구제도의 단순한 도입보다 우리 문화에 적합한 모델을 정착시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 바람직한 경제개혁을 실시하려면 인기는커녕 때로 다수의 뜻에 거슬러 올라가는 용기도 필요하다.

국민소득이 1만달러에도 미치지 못한 경제가 지나친 분배욕구에 휩쓸려 성장의 원동력마저 상실한다면, 2030의 미래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7%의 고도성장'과 '2백50만개의 일자리 창출'도 자유로운 기업환경과 노사관계의 선진화, 정부조직과 관료의 경쟁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경제개혁의 최우선 순위도 여기에 주어져야 한다.

열린 마음으로 일부 계층의 불안을 덜어주고,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한다면'국민이 모두 잘 사는'나라를 어찌 만들 수 없겠는가. 이제 불안과 염려는 세모에 묻어버리고, 새해 새 정부에 한번 큰 기대를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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