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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시장경제 야유하는 우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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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우화(寓話)의 장점은 재미와 메시지를 함께 담고 있다는 데 있다. 어릴 적 읽었던 이솝 우화가 그렇다. 직설적인 강의와 훈시가 간접적인 비유와 풍자로 포장되면 문득 전달력이 훨씬 커진다.

요즘엔 딱딱한 경제 이야기를 쉽게 풀어쓴 책들이 유행이다.

하버드대의 그레고리 맨큐 교수가 풍부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 『경제학(Principles of Economics)』이 대표적인 예다. 얼마전 본란에 소개됐던 토머스 소웰의 『시티즌 경제학』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런 책들은 여전히 경제학의 이론을 바탕에 깔고 독자를 가르치려 한다.

하와이 퍼시픽대학의 켄 스쿨랜드 교수는 다른 접근법을 시도했다. 그는 독자를 가르치는 대신 독자에게 묻는다. 그가 쓴 『조나단 걸리블의 모험』은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경제학적 소재로 패러디한 현대판 경제 우화다.

호기심 많은 우리의 주인공 걸리블은 배가 난파하는 바람에 미지의 섬 코롬포에 표류해 전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 그가 마주친 코롬포의 제도와 관행은 한편으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시장경제 체제와는 판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우리가 주변에서 늘 보아온 경제구조의 파행과 왜곡의 극단을 보여준다.

그의 모험을 따라가다 보면 공익을 위한다며 멀쩡한 집을 허물고, 키가 크다는 이유로 세금을 물리는 황당한 일이 어떻게 민주주의의 허울 속에서 벌어질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또 정치가와 직업관료들이 각종 이익집단들로부터 왜 자유로울 수 없는지를 다시금 되새겨보게 된다.

저자가 39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주는 걸리블의 여정은 책의 부제가 말해주듯 '자유시장(free market)을 향한 오디세이'다. 저자 자신도 후기에서 이 책이 철저하게 자유주의 시장경제원리에 기초해 썼음을 밝히고 있다. 다만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기보다는 그저 사례를 보여주고 독자 스스로가 고민해보기를 권할 뿐이다. 이 때문에 경제이론에 대해 명쾌한 설명을 바라는 독자에게 이 책은 실망스럽다. 그러나 경제학 교과서에 곁들여 일상의 경제현상을 한번 뒤집어보고 싶은 이들에겐 괜찮은 부교재감이다.

김종수 기자

jong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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