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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美術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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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면

현대미술의 시작은 1917년 '변기 사건'이후부터다. 작가 마르셀 뒤샹이 냄새 나는 화장실의 변기 하나를 전시장에 척하니 모셔놓고 그것이 미술작품이라고 잡아떼기 시작했던 역사적인 해가 그때다. 이후 현대미술의 급부상, 근대 미술 개념의 실종은 동시에 일어났다. '의미있는 형식, 조화롭고 균형잡힌 아름다움'과 같은 뜻으로 쓰여온, 지금도 상식 수준에서는 강세인 근대미술의 개념은 십리만리 달아난 것이다.

◇ 미술은 꼭 아름다워야 할까=아니나 다를까. 『과연 그것이 미술일까』(원제 But Is It Arts)에는 64년 앤디 워홀이 벌인 '브릴로 박스 사건'이 나온다. 용도폐기 직전의 근대 미술에 확인사살을 감행한 또 한번의 역사적 사건 말이다. 팝 아트의 거장 워홀은 뒤샹보다 훨씬 썰렁한 소재를 선택했다. 수퍼마켓에 지천으로 쌓인 세척제 브릴로의 포장상자를 전시장에 수북이 쌓아놓은 대형전시회를 연 것이다. 전시를 본 뒤 철학자 아더 단토는 근대미술의 죽음을 이렇게 확인했다.

이 대목에 대한 설명작업이 이 신간의 주제이니 주의깊게 읽어보자. "워홀은 예술품과 일용품 사이의 차이를 더 이상 구분할 수 없다는 철학적 진술을 효과적으로 했다. 이로서 5백년 동안 진화해온 미술의 개념은 공중분해됐다. 미술품은 더 이상 아름다워야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림이 주제를 가져야 할 필요도 없다. 손끝의 붓터치가 만들어내는 마술의 산물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저자도 이렇게 맞장구치고 있다. "예술은 더 이상 아름답거나 도덕적일 필요조차 없으며 개인적 천재성을 표현하는 것 역시 올드 스타일에 불과하다".(81쪽) 이 책의 저자 프리랜드는 미 휴스턴대의 여성 철학교수. 그의 책은 최근 2~3년 새 국내 독서시장에서 뚜렷한 줄기를 형성해온 미술 교양서적의 하나다. 아직도 눈 앞의 대상을 그대로 재현(再現)한 작품에만 친근감을 가지면서 막상 훨씬 자유롭고 활달한 현대미술에는 외려 낯가림을 하는 이들을 위한 입문서로 적절한 이 책의 특징은 미술사 못지않게 철학 쪽의 목소리를 함께 들려준다는 점이다.

◇ 오줌에 범벅된 예수상=따라서 미술사 쪽 일부 정보들이 누락돼 아쉽기도 한 책이 『과연 그것이 미술일까』이다.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인 피카소가 중심이 된 현대미술 전반전의 사조인 다다이즘·초현실주의, 현대미술 후반전의 핵심인 추상표현주의·팝 아트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 한계는 칸트·흄에서 단토에 이르는 철학 쪽 목소리로 보충이 된다.

자,앞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책의 도입부 저자가 선택한 서술방식은 충격요법이다. 포르말린으로 채운 유리 진열장 안에 죽은 상어나 토막난 암소 따위를 진열한 섬뜩한 영국 작가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소개가 그것이다. 상대방 남자가 쩍 벌리고 있는 입에 오줌을 누는 모습을 찍은 미국 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사진 '짐과 톰, 사우살리토'도 있다. 또 작가 자신의 오줌을 이용해 그것에 적신 십자가와 예수상을 만들어놓았던 악명높은 '오줌 예수'(안드레스 세라노 작품)도 소개된다.

'오줌 예수'에 질겁을 한 미국의 정치인들은 미국예술기금재단이 주는 지원금을 철회하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묻는다. 그러면 왜 현대미술은 그 예전 보티첼리의 작품 '비너스의 탄생'처럼 고양된 아름다움의 예술을 멀리할까. 피·오줌에서 정액까지 재료로 동원하고, 신성모독도 불사할까. 그것은 임마누엘 칸트가 근대적 미학의 핵심으로 지목했던 '목적없는 합목적성'과의 인연끊기로 파악된다.

따라서 고전주의·낭만주의·인상주의로 이어지는 근대예술 자체가 예술의 개념을 스스로 축소한 '좁은 예술'일 수 있고, 고대 이래로 유장한 예술의 흐름으로 보자면 돌연변이의 출현이 서양근대 미술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현대미술은 '열린 미술'로 행동반경을 넓히는 모험 속에 '삶을 닮은 예술'(life-like arts)로 제자리를 찾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 함께 읽을 현대미술서 5권=대세가 그렇다면 아직도 데생으로 미술교육을 시작하고, 그 때문에 학생들의 상상력을 죽여온 국내미술의 '촌티'도 반성해봄직한 계기가 이 신간이다. 이 책과 함께 읽을만한 현대미술 가이드 북은 구간 중에 적지않다. 우선 이주헌의 『미술로 보는 20세기』(학고재)를 챙겨 읽어봄직하다. 현대사회의 핵심주제와 현대미술 사이의 대화와 긴장관계가 순도높다. 디자인을 넘어 현대미술의 모험에 대한 정확한 정보 역시 뛰어난 김민수의 『김민수의 문화디자인』(다우)역시 필독서다.

이밖에 워홀·요셉 보이스 등 포스트모던 작가들과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인터뷰집 『현대미술의 변명』(진 시겔,시각과 언어), 제작과정과 아이디어 등을 주로 작가의 입장에서 정리한 『현대미술 감상의 길잡이』(필립 예나윈,시공사), 현대미술의 해체와 파괴 그리고 재생에 이르는 과정을 18명 작가별로 다룬 『거꾸로 서있는 미술관』(박정욱,예담)등도 읽어볼 만하다.

조우석 기자

wow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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