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4) 나는 느낀다, 고로 행동한다:"즐기자"… 싸움판 선거도 축제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역사상 어느 시대에나 신세대는 있었다. 그들은 기성세대의 눈에 항상 반항적으로 비친다. 기존의 가치관을 거부하는 그들의 에너지는 윗세대와 충돌하면서 다듬어지고, 서서히 새로운 기성세대로 성장한다.

이 시대의 2030은 먹기 위해 살지 않는다. 40대 이후 세대의 가치관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전쟁과 배고픔은 그들에게 추상적이다.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성공에 매달리지 않는 그들은 현실을 감성적으로 느끼며 개성적으로 즐긴다.

이 같은 2030의 '나는 느낀다, 고로 행동한다'는 감성철학이 우리 사회를 빠른 속도로 변화시키고 있다. 빛의 속도로 전파되는 사이버 공간을 통해 그들의 사고와 주장이 순식간에 사회 전체로 확산되면서 변화의 핵으로, 주류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올해 우리 사회의 문화 코드는 '눈물'이란 감성적 단어로 표현된다. 최고 흥행 영화인 '집으로…'를 시작으로 '붉은 악마''촛불 시위'등이 눈물을 매개로 2030을 하나로 묶었다. 대선 TV광고에서 노무현 후보의 눈물은 완결편이라 할 수 있다. 선거를 투쟁이 아닌 축제로 바꿔 참여의 마당을 꾸민 그들의 감성적 문화연대는 이제 우리 사회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손혁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은 "21세기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높이려면 2030의 감성에 4050의 경험과 이성을 곁들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시민운동도 즐기면서=지난 14일 오후 8시 서울 지하철 강남역 앞. 벤처기업 직원인 오제환(33)씨는 퇴근 길에 노란 목도리를 두르고 80여명의 노사모 회원과 "노무현 짱!"을 외치며 춤을 추고 있다. 吳씨는 "노사모가 선거운동 조직으로 움직였지만 연예인 팬클럽 못지 않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일과 놀이의 경계가 없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주변 공간을 모두 놀이터로 바꿔버리는 문화공간의 창조자다. 그들에겐 정치도 플래카드·피켓과 구호 뒤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놀이마당이었다. 그들은 이 놀이마당에서 한판 축제를 벌였던 것이다.

얼마 전 서울 명동에서 녹색연합이 마련한 '사지 말자'는 소비절약운동 집회가 열렸다. 시민들은 "하나 하면 바∼이(Buy), 두∼울 하면 낫싱(Nothing)"하는 힙합 음악에 어깨를 들썩였다.

녹색연합 김타균 실장은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젊은 자원봉사자가 늘고 있으며, 이들은 시민운동을 시대적인 의무라기보다 재미있는 일상이자 즐거움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시민운동이 2030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재미+메시지'로 달라진 것이다. 상지대 홍성태 교수(사회학과)는 "매니어적 성향의 2030이 재미와 사회참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 하면서 사회 변혁에 관한 거대 담론도 시민들의 일상사로 자리매김되고 있다"고 말했다.

◇어디서나 당당하게=그들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나는 나'다. 기성사회의 '눈치보기 문화'대신 당당하게 튀는 개성문화로 바뀌고 있다.

23일 서울 반포동의 H찜질방. 아줌마들로 북적대리라는 예상은 현관에서 깨졌다. 이성 친구와 손을 맞잡은 대학생들, 책을 놓고 둘러앉아 토론하는 독서 동호회원들. 찜질방은 젊은 그들의 아지트로 변해 있었다. 찜질방 하진용(34)관리과장은 "주말이면 미팅·데이트나 동호회 모임을 위해 찾아오는 젊은이들로 넘쳐난다"고 말했다.

문화평론가 서동진(36)씨는 "2030에겐 도시 전체가 테마파크다. 어떤 공간에서든 자신들의 정체성을 스스럼없이 발현한다"고 분석했다.

23일 오후 9시 서울 역삼동의 나이트클럽 '돈텔마마'. 2030 직장인과 미시족들이 사이키 조명 아래 흥겹게 춤을 추거나 대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나이트클럽의 정탁상 전무는 "예전엔 끼리끼리 모여 댄서의 춤을 구경만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테이블의 이성과 어울리며 즐기다가 시간이 되면 미련없이 자리를 뜬다"고 말했다.

서울사이버대학 송재룡 교수(사회복지학)는 "2030이 기존의 가치관과 가부장적 권위에 덜 복종적인 삶의 행태를 보이는 것은 사회적 시선에서 자유로운 개성주의가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첨단 트렌드를 따라=2030에게 세계적 추세를 따르고 소화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경쟁력이다. 그들은 글로벌 라이프스타일을 동시대적으로 느끼고 참여하려고 한다.

지난 22일 서울 신공덕동 S아파트. 30대가 주축인 주민들은 아파트 홈페이지에 개설된 온라인 반상회 사이트에서 만난다. 이곳에는 '놀이터를 만들자'는 안건은 물론 '맛있는 중국집''쓰다만 침대를 판다'는 정보 제공까지 오간다. 종전의 오프라인형 반상회를 온라인형 인터넷 모임으로 생활양식을 바꿔버린 것이다.

23일 서울 강남의 M영어학원. 이곳의 인기반은 시트콤 '프렌즈' 영어강좌다. 수강생 정원은 20명. 5개의 강좌가 있지만 희망자는 매달 넘쳐난다.

미국 뉴요커의 생활을 다룬 시트콤 '프렌즈''섹스 앤 시티''앨리의 사랑만들기' 등에 젊은 그들은 열광한다. 다음 카페에만 1만여명에 이르는 회원들이 '프렌즈'동호회에 가입돼 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액세서리와 패션은 '프렌즈 패션'을 만들었을 정도다.

문화평론가 이원재씨는 "2030에게 뉴욕 신세대의 과감한 성(性)담론과 감각적인 패션, 자유로운 삶의 방식 등은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자신들의 삶의 벤치마킹 대상"이라고 말했다.

기획취재팀=이원호·백성호·손해용 기자 llhll@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