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경의 책vs책] 여자는 왜 사랑하면 집착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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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올림푸스 산에서 헤라와 제우스가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남녀가 사랑할 때 둘 중 누가 더 많이 사랑하는가 하는 얘기였다. 제우스는 여자가, 헤라는 남자가 더 많이 사랑한다고 주장했다. 결론이 나지 않자 이 부부는 테이레시아스를 불러 물어보기로 했다. 그는 남자로 태어났으나 잠시 여성이 되었다가 다시 남자로 돌아온 장님 예언가였다. 테이레시아스는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사랑에 빠지면 여자가 남자보다 아홉 배쯤 더 많이 좋아합니다."

조셉 캠벨의 '신화의 힘'에 나오는 얘기다.

사실 늘 그것이 궁금했다. 프리다 칼로뿐 아니라 실비아 플라스, 카미유 클로델 등 많은 여성 예술가들이 왜 그토록 남자에게 집착하는 삶을 살았을까. 그 사랑이 당사자를 고통으로 밀어넣는데도 끝끝내 그 사랑을 안은 채 불행의 나락으로 걸어들어갔을까.

프리다 칼로의 생은 특히 안타깝다. 그의 남편 디에고는 배가 고프면 화를 내고, 예쁜 여자만 보면 칭찬하고, 여자와 함께 갑자기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칼로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난 평생을 디에고를 사랑하느라 보냈고 내 일에 대해서는 게으를 뿐이었지"라고 쓴다.

혹시 재능있는 여성 예술가들이 개인적 고통에 얽매여 이웃의 고통에 눈 돌릴 줄 몰랐으며, 자신의 예술을 좁은 영역에 가두었고, 궁극적으로 재능을 낭비한 게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그런 의문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말해준 여성이 독일 화가 캐테 콜비츠이다. 그녀의 삶도 남편 칼을 사랑하는 일생이었다.

"늙은 여자인 내가 이미 오래 전에 극복했다고 믿었던 질투심 때문에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다니. 질투는 끔찍하고, 타는 듯한 아픔을 주고, 가슴을 옥죄게 만들고, 짓누르는 굴욕감이다."

그렇게 말하는 캐테 콜비츠의 그림은 그러나 노동자, 농민, 군인 등 동시대인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표지에 사용된 '전쟁에 반대한다'를 비롯해 책에 실린 70여 점의 작품과 시선이 맞닿는 순간 가슴이 저려온다.

두 책은 평전이 아니라 일기와 편지를 묶은 것이다. 평전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가공 포장되어 수퍼마켓에서 팔리는 오이라면, 이 책들은 야채밭에서 바로 따서 옷자락에 스윽 문지른 후 한 입 베어 먹는 오이 맛이다. 그 맛의 차이는 먹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책에서 만나는 그 나약하고 불안하고 우울한 영혼들의 목소리와 계속 접하다보면 비로소 이해할 것 같다. 저 어리석고 서투르고 질투하는 삶이 바로 사랑의 본질이며 또한 예술의 핵심이라는 것을.

사실 오래도록 그것이 궁금했다. 왜 아홉 배인가. 테이레시아스도 조셉 캠벨도 아홉 배의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그래,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다. 사회적으로 남자의 권력이 여자의 것보다 아홉 배쯤 크기 때문일 수도 있고, 사랑할 때 여성이 느끼는 절정감이 남성의 것보다 아홉 배쯤 크기 때문일 수도 있고, 생물학적으로 난자가 정자보다 아홉배쯤 비싸기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려나, 그 아홉 배쯤 큰 사랑이 바로 그만한 축복이며 창조성임을 이제는 알 것 같다.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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