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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지문·얼굴정보 채취 제도와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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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개정된 출입국관리법이 시행(8월 15일)됨에 따라 17세 이상의 외국인이 입국하거나 국내에서 90일 이상 체류코자 할 때에는 지문과 얼굴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입국 외국인의 수가 연간 1000만 명에 근접한 상태에서 새 조치는 시대 상황을 적절히 반영한 정책이라고 본다. 특히 호적이나 주민등록제도 같은 것이 없거나 부실한 국가의 사람들이 위·변조된 여권으로 입국하려다 적발되는 사례가 매년 2000여 건에 달해 외국인 범법자나 우범자의 입국 차단에 유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외국인에 대해 지문 제공 의무를 부과한 것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도 아니다. 최근 외교·무역·교류·혼인 등의 상대가 넓어지면서 다문화 사회로 빠르게 바뀌고 치안수요도 변해 ‘국민의 정부’ 때 폐지됐던 지문제도를 부활시키고 얼굴 사진도 함께 채취하는 방안을 강구하게 된 것이다.

지문과 얼굴 사진 채취는 모든 외국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조치라는 지적이 있지만 국가 안보와 내·외국인의 안전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가릴 만한 설득력은 없다. 극소수의 용의자를 가려내려고 모든 입국자의 지문과 얼굴 정보를 채취하는 것은 ‘비례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불순자 한 명이 항공기·열차·선박·지하철·건물 폭파, 요인 납치·살해, 마약 밀수, 위폐 유통 등을 통해 국가사회에 미칠 수 있는 해악을 산술적으로 논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새 제도에는 예기치 못한 곤경을 불러올 수 있는 함정들이 숨어 있다. 컴퓨터 오작동이나 입력된 DB정보가 악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의 입·출국과 국경관리 총괄시스템(US-VISIT)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2001년 9·11 테러사건을 계기로 국토안보부(DHS)에 구축돼 14~79세 사이 외국인을 대상으로 2004년 가동된 정보조회 시스템은 구축 이전부터 잠재적 문제점과 위험성을 둘러싼 논쟁이 뜨거웠다.

첫째로 컴퓨터 작동의 오류로 무고한 사람이 졸지에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전국 수백 개의 국제공항과 국제항구에서 매 순간 수많은 사람이 장시간 입국 대기를 하는 상황에서 컴퓨터 장애로 조회가 지연되면 원성이 높아질 것은 자명하다.

둘째로 개인정보가 유출돼 다수의 외국인이 동시다발적으로 피해를 볼 수 있다. US-VISIT에 따라 미국 정부가 앞으로 보유하게 될 입국자의 지문과 얼굴 사진의 양은 천문학적 수준에 이를 것이다. 그것들이 해커들의 표적이 될 가능성을 예상한 보안대책을 따지는 사람이 많고, 이는 고도의 첨단기술과 고액의 예산 투입을 계속적으로 요하는 문제라서 여전히 현안으로 남아 있다.

셋째로 채취된 개인정보들이 국가·집권자 혹은 개인의 불순한 의도에 악용될 수 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정책은 사소한 착오나 무관심이 심각한 외교마찰을 불러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새 제도 정착을 위해 치밀한 사전 대비와 관리가 요구되는 이유다.

조병인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범죄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