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軍 외출금지가 뜻하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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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주한 미8군 장교가 퇴근길에 길 가던 한국 청년 3명에게서 집단폭행을 당하는가 하면 미군들이 한국 택시 승객들을 집단 폭행한 일도 벌어졌다. 비록 별개의 돌출 행동이지만 한·미 두 나라 간 정서가 매우 민감한 시기에 일어난 불상사라는 점에서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특히 미군 장교 폭행에 대해 주한 미군 측은 우리 측에 깊은 유감을 표명하고 이번주 내 전미군에 외출·외박 금지 등 영외 활동 제한을 권고했다고 한다. 이미 서울 신촌 등 유흥가 일부에 '미군 출입 금지'가 나붙었으며 지난 9월 발생한 미군 병사들의 '지하철 봉변'이후 이태원 일대 밤거리는 미군들이 자취를 감춘 지 오래라고 한다. 여중생 사망 사건 이후 우리 사회의 반미 기류가 위험수위로 내닫고 있다는 걱정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주한 미군이 신변에 위협을 느껴 바깥 출입을 못하는 상황이라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수 없다. 그러잖아도 미군의 한국 근무 여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해 한국 근무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고, 따라서 '그렇다면 철수 문제를 심각히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움직임도 미국 내 일각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고 한다. 이는 한·미 두나라 모두에 불행한 일이다. 엊그제 경제5단체가 반미 시위의 자제를 호소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감정적 대응은 쌍방통행이어서 미국 내에서 반한(反韓)감정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고의성 없는 과실치사를 두고 '살인 미군'으로 몰아세우거나 일단 끝난 재판의 무효화를 고집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최근의 촛불시위는 한국인의 자존심을 되찾고 한·미 간 대등한 동반자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우리 국민의 순수한 열망의 표시라는 것은 미국인들도 잘 알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이 순수성을 훼손하는 돌출행동은 자제하고, 반미와 미군 철수 운동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줘야 한다. 거리에서의 이같은 집단 폭행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한·미 당국 또한 다각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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