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중앙시조대상]대상 이정환씨… 신인상 정휘립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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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국내 최고 권위의 시조문학상인 중앙시조대상 제21회 수상작이 선정됐다. 대상은 이정환씨의 '원에 관하여·5', 신인상은 정휘립씨의 '아내의 잠'으로 결정됐다. 수상작은 지난 1년간(2001년 12월∼2002년 11월) 문예지 등 각종 매체를 통해 발표된 신작 시조를 대상으로 했다. 시조 시인인 이지엽·민병도씨가 예심을 맡아 후보작을 선정했으며, 지난 7일 김제현·이상범·오세영 세 시인이 본선 심사를 했다. 한편 중앙시조백일장 연말 장원은 강정숙씨의 '흔들의자'가 차지했다. 지난 1년간 매월 실시한 중앙시조백일장의 입선자에게 다시 작품을 응모받아 선정한 연말장원 수상자는 자동으로 중앙신인문학상 시조부문 수상자가 된다. 시상식은 20일 오후 5시 본사 로비 1층 연수실에서 열린다.

[대상]원에 관하여·5

이정환

1.호미

몸을 낮추어야

속살 파헤쳐지는 것을

저렇듯 긴 이랑 땀방울로 적시기까지

쪼그려

앉은 그대로

뻗어 나가야 하는 것을

2.삽

얼어붙은 땅을 파 본 사람이면 안다

삽자루가 가슴팍에

들이치듯 부딪칠 적마다

삽날에

불꽃이 튀듯

마음에 솟는 화염을

3.괭이

힘껏 내리찍는 옹골찬 어깨에 실려

청석(靑石)에 부딪쳐 푸른 불꽃 터뜨리는

언 땅에 봄빛 흩으며

실한 씨 흩뿌리는

4. 쟁기

속살 드러내며 젖은 흙 뒤집힐 때

가슴 골을 깊숙이 파 들어갈 일이다

몸 속의

피의 길도 이 봄

거꾸로 흐르고 흐를

5. 낫

풀의 목을 칠까

이슬 베어 가를까

썩은 손마디며

생가지 내리칠까

휘굽어

벼린 저 칼날

잠들지를 못한다

[신인상]아내의 잠

정휘립

잠은 헛소리들로, 기운 자국 투성이였다.

작업복 타진 가랭이 퀴퀴한, 체취 내부에

서너 푼 추억의 이(蝨)들을 꿈결같이 기르고,

선창가 먼지바람이 순찰 도는 시골 읍에

겨울의 눈썹털을 뽑아내며 싸락눈 오면,

아비의 쇤 기침에서 건져 올린 새치 몇 개.

고향은 섬 갯벌에 발이 빠진 아이처럼

허우적거리다, 길가에 나앉아 울기도 하다가,

빈약한 엄마 젖살 위에서 쌕쌕 눈을 감는다.

햇살로 점점이 녹는 비닐창 서리꽃에

아침이 제 이마를 하염없이 찧고 있는데,

그 잠은 얼마나 깊은지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

가위눌린 파도 소리로 빈 이물을 가득 채우며,

급기야 사다리를 헛디디는 소스라침과 함께,

아내는 심해 속에서 떠오르는 닻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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