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 문세광 사건] 저격 후폭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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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세광의 총탄은 한국 정치에도 거센 후폭풍을 몰고왔다.

사건 7일 후인 22일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이 물러났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던 '피스톨 박'이다. 후임으로 차지철(사진(上)) 경호실장이 임명됐다. 15년 동안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던 박종규 라인이 몰락하고 차지철 사단이 등장하면서 공화당 정권의 권력 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또 중앙정보부장 신직수씨가 옷을 벗었다. 그 자리에 김재규씨(下)가 임명됐다. 문세광 사건을 계기로 5년 뒤 있을 대격변의 두 주인공이 한꺼번에 등장한 것이다. 권력은 순식간에 차지철 경호실장으로 집중됐다. 차지철은 경호를 구실로 대통령에게 접근하는 인물들을 통제하고 차단했다. 대통령의 이름을 팔며 공화당 내 인사를 주물렀다. 경호부대의 정신무장을 구실로 청와대 인근에서 열병식을 벌이며, 장관.여야 정치인들을 불러 참관케 했다. 차지철을 통해 대통령의 하사금을 받는 군장성.정보부 고위직도 늘어갔다. 차지철의 경호실은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는 부패 권력의 온상이 돼 갔다.

비대해진 경호실은 국가 운영에 필수적인 정보 시스템을 붕괴시켰다. 차지철은 사설 정보팀을 운영하며 중정을 앞질러 주요 정보를 장악했다. 경호를 구실로 중앙정보부장의 청와대 출입마저 제동을 걸었다. '냉정한 정보'를 공급해야 하는 정보 시스템에 이상이 생기면서 권력 내부는 혼란에 빠졌다. 박정희는 눈에 띄게 총기와 균형감각을 잃어갔다. 더불어 유신체제는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안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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