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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사설

논란만 불러일으킨 ‘통일세 제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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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명박 대통령의 통일세(統一稅) 도입 제안을 두고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야권은 비판 일색이다. ‘맞선도 안 보고 예식장부터 잡는 격’ ‘남북교류협력기금을 3% 수준밖에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세금을 걷자는 주장은 뜬금없다’ ‘흡수통일을 생각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많아 북한을 자극하는 내용’이라는 등등. 주로 현 정부의 대북 강경책 수정을 촉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권도 찬성만 하는 건 아니다. 통일세 제안 계획을 사전에 전혀 알지 못했다며 불만스러워하는 기류가 강한 가운데 ‘당장 쓸모가 정해져 있지도 않은 일을 위해 세금을 도입하자는 주장은 비현실적’이라거나 ‘재정적자를 줄이고 경제를 활성화해 통일비용 부담 능력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논란이 커지자 이 대통령은 “통일세를 당장 과세할 것은 아니다”며 슬그머니 발을 빼는 모양새다. 청와대 대변인도 대통령의 문제의식은 “그동안의 대북정책이 ‘분단관리’였지 ‘진짜 통일정책’이 아니었다는 것”이라며 진화했다. 우리는 여전히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보지만 대통령의 문제의식 자체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다만 정부의 가장 중요한 책무 가운데 하나인 대북정책·통일정책을 깊은 정책적·전략적 고려 없이 불쑥 던졌다가 논란이 커지자 ‘아니면 말지’ 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대북정책은 대표적인 갈등 요인이다. 분단 상황에서 비롯되는 온갖 이념적 갈등과 겹쳐져 정부의 어떤 정책도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지난 정부는 끊임없이 ‘퍼주기’ 논란에 시달렸고, 거꾸로 현 정부는 ‘안보위기를 초래하고 통일에 대한 비전(vision)이 없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이 같은 갈등과 논란은 대북정책의 실효성을 훼손하고 심지어 북한에 악용되기까지 하는 원인이다. 따라서 정부는 정책이 야기할 갈등을 최소화하는 데 가장 큰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아가 설익은 정책을 제시하지 않는 일 못지않게 균형을 갖춘 정책을 수립하려는 노력도 절실하다. 우리는 이 점에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에 대한 전반적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퍼주기’에 대한 비판도 의식해야 하지만 거꾸로 지나치게 원칙만 강조하는 경직성도 정책의 실효성을 해치기는 마찬가지다. 현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급락(急落)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북측이 원인 제공을 한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부도 경직된 대응으로 일관해 경색을 심화시킨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우리는 판단한다. 예컨대 남아도는 쌀 때문에 골치를 썩으면서도 식량난을 겪는 북한에 줄 순 없다는 식의 경직성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기 어려운 정책인 것이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가 매년 실시하는 ‘국민통일의식조사’ 결과는 국민들의 대북정책에 대한 만족도나 신뢰도가 각각 40%와 30% 미만의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신중하게 되돌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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