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끝>'신청년'과 이후의 동인지들:'신청년'서 낭만·프로문학 '배양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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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최근 발굴된 잡지 '신청년(新靑年)' 제 1∼3호 참여 인물들과 제 4∼6호 참여 인물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혀내는 작업이 주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본지 12월 5일자 1, 20면>

1∼3호의 작가들은 주로 경성 청년구락부와 관련된 인물들로 구성됐다. 제 1,2호에서는 경성 청년구락부라는 단체의 존재를 밝히지 않다가 3호부터는 사고(社告)를 통해 공개했다.

이 단체의 성격 규명과 함께 4∼6호 참여 작가들이 경성 청년구락부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앞으로 밝혀내야 하는 것이다.

이미 지적한 대로 방정환·유광렬·이중각·김선배가 1∼3호를 주도했다. 서양 문예사조를 주로 소개한 '태서문예신보(1918년 9월 창간)'의 핵심 멤버였던 장두철·이일과 함께 심훈도 여기에 참여했다. '신청년'4∼6호는 나도향·박영희·최승일이 편집 책임을 맡았으며, 황석우·현진건·박종화 등이 필진으로 나섰다.

'신청년'4∼6호의 주도층 가운데 나도향·박영희·현진건·박종화 등은 이후 '백조(白潮·1922년 1월 창간)'의 동인이 된다. 황석우·박영희·박종화는 '백조'이전에 발간된 시전문지 '장미촌'(1921년 창간)의 동인이기도 하다.

잡지 '신청년'에 대한 첫 논문을 발표한 한기형(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국문학)교수는 "문예동인지 '백조'이전에 '백조'를 향한 초보적인 움직임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한국문학사에서 검토된 적이 없는 일"이라면서 "'신청년'4∼6호의 주도자들이 '백조'를 결성하기에 앞서 '신청년'을 통해 '동인 실험'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도향과 함께 '신청년'4∼6호를 주도한 최승일이 '백조'에 합류하지 않고 '염군사(焰群社·1922년 9월 조직)'를 통해 프로문학운동에 가담하게 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신청년'3호에 『찬미가(讚美歌)에 싸인 원혼(怨魂)』이란 소설을 발표한 심훈도 '염군사'의 회원이었다.

'장미촌'과 '백조'에 참여했던 박영희의 삶은 '신청년'관련 인물 가운데 가장 극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백조'이후 1924년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에 적극 동참했다가 1929년 카프를 탈퇴하고 친일적 문학에 가담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1950년 납북됐다.

어찌됐건 '신청년'의 핵심 멤버들이 '백조'와 '염군사'라는 상반된 두 개의 흐름으로 분화되는 셈이다. '신청년'의 역사 속에는 한국 근대문학의 핵심적 기제인 낭만주의 운동과 프로문학 운동의 계기들이 모두 함께 들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 주목한 한교수는 "'신청년'이라는 잡지의 존재는 낭만주의 운동과 프로문학 운동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포함해 근대문학 전체의 구도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숙제를 던져준다"고 밝혔다.

나도향은 '은하(隱荷)'라는 필명으로 '신청년'4∼6호에 '나의 과거(1)', '나의 과거(2)', '달팽이', '박명(薄命)한 청년' 등 네 편의 소설을 실었다. 박영희는 '송은(松隱)', '회월(懷月)이란 필명으로 '애화(愛花)'란 소설 한 편과 '은하군과 그의 작품' '시인 바이론의 생애'란 평론 두 편, 그리고 '목동(牧童)의 적(笛)' '눈물의 궁전' '소리없는 동무'란 시 세편을 싣고 있다.

무용가 최승희의 오빠이기도 한 최승일은 '신청년'에 '애(愛)와 이성(異性)'이란 시 한편과 '울음', '무덤'이란 소설 두 편을 발표했다. 문예동인지 '폐허(廢墟·1920년 7월 창간)'에 참가하기에 앞서 황석우는 '신청년'제4호에 '신청년 4호에 기하야'라는 부제를 단 시 '송(頌)' 한 편만 확인됐다. 이 시는 1929년 간행된 황석우 시집 '자연송(自然頌)'에 이 작품이 빠져 있는 것으로 보아 다른 경로로 발표되지는 않은 것 같다.

'신청년'4,5호에는 박종화와 현진건도 참여한다. 박종화는 '운명의 만가(輓歌)', '눈물의 꿈길'이란 시 두 편을 제4호에 발표했다. 이 시들은 이후 박종화의 시집 '흑방비곡(黑房秘曲)' (1923년 발간)에 재수록돼 있기에 이번 '신청년'발굴로 처음 알려진 시는 아니다.

현진건은 번역시 '걸인(乞人)'을 5호에 싣고 있는데 이 또한 현진건 연구사에서 거론된 적이 없는 작품이다.

그런데 '신청년'5호는 이번에 목차만 확인했을 뿐 실물은 발견하지 못해 그 시의 내용까지는 알 수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현진건이 '신청년'에 참여했음을 아는 것 만으로도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배영대 기자

balan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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