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관계맺음에 관한 단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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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울 때는 사랑을 꿈꿀 수 있다.-하지만, 사랑에 빠진 뒤에는 외로움을 망각하기 십상이다.그러니 사랑하고 싶거든 외로워할 줄도 알아야 한다. 외로워할 틈이 없다는 것, 그게 문제다. (중략) 외로움이라는 특혜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에게만 돌아가는 것이다."

시인 안도현씨가 펴낸 『안도현의 아침엽서』는 사랑과 아름다움과 관계맺음에 관한 수상록이다. 말의 경제적·미학적 운용에 관한 전문가인 시인답게 이 책은 적게 말하는 방식을 택해 독자들을 생각의 바다로 이끈다. 책은 크게 '봄날, 그리운 첫사랑' '여름, 생명에 대하여' '가을, 하늘과 닮은 행복' '겨울, 경쾌한 발걸음' 등 4부로 나뉘어 있다.

"가슴이 아프다 마는 정도가 아니라 가슴이 빠개지는 일이 좀 있어야겠다.-함께 간다는 것,사랑한다는 것, 그런 말들은 되도록 아껴야 한다. 말은 아낄수록 빛이 나기 때문이다."

이름을 불러주고 기억하는 데서 관계맺음은 시작한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의 관계에는 일종의 종교적 태도가 필요하다. 지극 정성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 눈물과 땀방울 속에 아롱아롱 맺혀있는 아름다움만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생각을 펼친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무엇인가-그건 마음 속에 오래 품고 있던 꿈을 실현한다는 뜻이다."

저자는 추억, 작은 것, 느린 속도,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아련함이 삶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이냐고 거듭 묻는다. 그것은 결국 서로에게 사무치는 것이다. "추억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무시한다는 뜻이다."

책은 마치 FM라디오 음악방송의 근사한 멘트를 듣는 느낌을 준다. 이른 아침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커피 한 잔의 향에 취해 이 책을 읽어보는 '사치'를 누려도 좋겠다. 그런 사치는 저자 말대로 "사소하면서도 아련한 냄새가 재산이나 업적보다 훨씬 소중하다"고 한다.

우상균 기자

hothea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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