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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 '性도발':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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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제목만 읽는 데도 시간이 좀 걸린다. 그리고 많이 튄다.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이하 '태권소녀'). 불편한 감도 있다.

이무영 감독은 시사회장에서 "이번엔 착한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멋진 영웅담도, 화사한 연애담도 아니다. 보통 사람의 얘기다"고 말했다. 지난해 데뷔작 '휴머니스트'에서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도덕·종교까지 핏빛으로 난도질했던 전력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그의 말대로 '태권소녀'는 전작에 비해 착하다. 간혹 육두문자가 튀어나오고, 질퍽한 성농담도 끼어들지만 관객을 경악케 하는 칼질·도끼질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감독의 기조는 크게 변한 것 같지 않다.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그의 개성은 여전하다. 할리우드로 치면 B급 영화의 감수성과 유사하다. 다수의 관객이 좋아할 만한 달콤한 줄거리, 기승전결이 확실한 구조에 전혀 기대지 않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태권소녀'는 거칠어 보인다. 내용도, 구성도 전혀 매끈하지 않다. 대신 감독은 이렇게 묻는 것 같다.

"세상은 원래 그렇게 뒤죽박죽 아닌가요."

'태권소녀'는 무엇보다 황당하다. 윤리·도덕이란 기성 세대의 가치관을 거침없이 뒤집는다. 거의 무정부 상태에 가깝다. 이 영화에 대한 호(好)·불호(不好)는 매우 선명하게 갈릴 것이다. 동성애·이성애·양성애 등 최근 한국 영화의 주요 코드로 떠오른 성의 다양성을 두루 건드린 것은 물론 일부일처제라는 결혼 양식조차 거부하고, 때론 다부다처제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제목이 가리키듯 영화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자나 깨나 돈만 달라고 울어대고 사치와 낭비를 일삼고 남편에겐 라면이나 끓여 먹으라고 하는 대책없는 아내 은희(조은지), 그런 철부지 아내를 달래려고 불철주야 방송 현장과 각종 이벤트 행사에 뛰어다니는 인기 개그맨 남편 두찬(최광일), 은희의 고등학교 친구로 은희의 행복을 위해 심지어 감옥에도 두번이나 가는 태권도 사범 금숙(공효진)이다.

영화에선 두가지 관계가 갈등한다. 알듯 말듯 서서히 깊어지는 은희와 금숙의 관계(우정일까, 사랑일까), 돈이 없으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은희와 두찬의 관계(부부일까, 원수일까). 두 관계가 서로 맞물리며 기상천외한 결론으로 치닫는다. 한 지붕, 한 남자, 그리고 두 여자가 오손도손 살을 비비며 살아간다. 금숙이 두찬의 아이까지 낳는 대목에 이르면 엽기란 표현이 모자랄 정도다.

줄거리에서 짐작할 수 있듯 '태권소녀'는 코미디다. 그러나 폭소는 터지지 않는다. 올 한해 우리 극장가를 줄기차게 점령했던 개그식 웃음과 거리가 멀다. 때론 썰렁한 느낌마저 줄 정도다. 그런데도 공감이 가는 대목이 많다. 과연 행복한 결혼이란, 나아가 이상적 인간 관계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인물은 캐리커처, 혹은 프로필과 같다. 삶의 단면을 상징한다고나 할까. 감독은 이들 셋을 한 집안에 뭉쳐놓고서는, 나와 구분되는 타인의 생활 양식을 인정하자고 주장한다. 다양성·상이성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다. 주제가 앞선 까닭에 드라마는 듬성듬성 끊긴다. 대체 이런 사람들이 어디 있겠느냐는 반문도 튀어나올 법 하다. 그러나 그게 바로 감독의 전략이자 영화의 핵심이니 대놓고 꼬집기도 어렵다.

감독은 도발적 내용을 누그러뜨리는 장치로 SF 분위기를 도입했다. 시간이 한참 흐른 2030년의 달나라 결혼식장에서 2002년의 세상사를 돌아보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현재 제기될 수 있는 각종 반문이 무의미해질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물론 그의 소망에 그칠 수도 있겠지만….

이감독은 '3인조''공동경비구역 JSA' 등에서 박찬욱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일반인에겐 방송 MC·리포터로 더 유명하다. 그의 비주류적 감성이 일반인에게 어떻게 수용될지…. 일단 색다른 상업영화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올해 방송·영화에서 정신 없이 뛰었던 공효진과 영화 '눈물''후아유'의 신인 배우 조은지는 연기하기 힘든 배역을 무난히 소화했다. 인기 개그맨역의 최광일이 좀더 웃겼다면 영화의 감칠맛이 더 살아났을 것으로 보인다. 6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박정호 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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