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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감시'받는 한국언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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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며칠 세계 언론인들의 회의 참석차 유럽을 다녀왔다. 다른 나라의 언론인들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이들과 견주어 본 우리 언론의 모습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지난달 23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국제언론인협회(IPI) 이사회는 한국을 언론의 자유 '감시대상국 명단'에 계속 올려두기로 결정했다. 요한 프리츠 사무총장은 그 배경으로 "대선을 앞둔 중대한 시점에 한국을 감시국 명단에서 제외하는 것은 언론을 적(敵)으로 삼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틀 뒤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세계신문협회(WAN) 이사회도 언론탄압 연례 보고서를 발표했다. 올 한해 39명의 언론인이 살해됐고 1백19명이 투옥됐다. 이사회를 유치한 러시아에서만 4명이 희생됐다. 러시아 신문발행인협회가 세계 신문업계 대표들을 초빙한 것도 자신들의 실상을 바깥에 알리려는 의도였다.

그래선지 러시아 언론인들은 푸틴 정부의 언론탄압에 거침없이 쓴소리를 해댔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신문협회 대표들 앞이라고 허세를 부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사실 그들은 테러와의 전쟁을 빌미 삼아 언론의 보도 자세에 간섭하는 푸틴 정부를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자리를 함께 한 서방 언론인들이 오히려 그들의 안전을 걱정할 지경이었다. 이처럼 정부에 맞서 싸우는 러시아 언론인들의 단합된 모습은 지난 수년 사이에 달라진 모스크바의 정경(情景)만큼이나 새로웠다. 오히려 정부의 눈치를 보며 어정쩡한 태도를 보인 언론사들이 왕따를 당할 정도였다.

빈의 IPI 이사회에서 거론된 바와 같이 러시아는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사에 거액의 세금을 물리고 공금횡령 등의 혐의로 사주(社主)를 구속했다. 베네수엘라는 정부가 관변단체들을 동원해 언론에 적대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폴란드는 특정 칼럼니스트를 쫓아내려고 언론사에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익숙했던 모습들이다. 이같은 사정이 이제 와서 얼마나 개선됐는지 모른다. 하지만 콜롬비아·러시아·멕시코·필리핀 등 언론인들이 목숨까지 위협받는 나라들에 비하면 우리의 상황은 분명 나아졌다.

오히려 대선 앞둔 시점에 우리 언론이 직면한 문제는 보도의 공정성이 아닐까 싶다. 우리 사정에 익숙한 외국 언론인들의 질문은 어김없이 그쪽으로 이어졌다. "너희 신문은 어느 후보를 지지하느냐." "모모(某某) 인사가 당선되면 너희 신문사는 어떤 영향을 받게 되느냐." 답은 궁색했지만 지난 몇년간 한국의 언론사 사주들이 줄줄이 옥살이를 한 사실을 알고 있는 그들의 당연한 궁금증이었다.

지난날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생존을 위협받을 당시 우리 언론사들에도 보도의 자유가 오히려 사치스러울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젠 세 불리기에 집착하며 특정 정치집단에 줄 대고 있는 것이 우리 언론의 또다른 모습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 주변에선 여전히 모 언론사는 어느 후보를 지지하고 또 특정후보와 관련된 보도에는 노골적으로 편파적이란 얘기가 나돈다.

프리츠 IPI 사무총장은 "한국 언론들이 대선 관련 보도에서 계속 문제를 가질 수 있음을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우리 언론의 현실이 보도의 자유란 측면에서 아직 감시국 수준임을 강조하기 위해 나온 말이다. 하지만 보도의 공정성을 문제 삼을 경우에도 과연 떳떳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바깥에서 바라본 한국 언론의 대선 보도 자세는 여전히 어지러웠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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