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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 관리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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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관광객들이 대구시 동구 신용동의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를 돌아보고 있다. 오른쪽에 실물 크기의 노 전 대통령 동상이 보인다. [프리랜서 공정식]

대구시 동구 신용동 용진마을. 노태우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동화사에서 팔공산 순환도로를 따라 파계사 쪽으로 가다 보면 ‘용진마을’이라고 적힌 표지석이 나온다. 좁은 길을 따라 600여m 내려가면 마을 어귀에 안내판이 세워진 집이 나타난다. 노 전 대통령의 생가다.

그는 이 집에서 태어나 경북고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 생가는 말끔하게 정비돼 있다. 새 기와를 얹었고 방문마다 창호지도 새로 발라 놓았다. 마당 옆에는 노 전 대통령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지난 6월 노 전 대통령의 가족이 세운 것이다. 입구에는 관광객을 위한 화장실이 있다. 생가는 466㎡ 터에 한옥과 초가 등 건물 세 채(건평 66.45㎡)로 구성돼 있다.

대구시가 노 전 대통령의 생가 관리를 자처하고 나섰다.

생가는 1993년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 관리자 없이 방치돼 왔다. 그러나 최근 문중에서 전면 보수했다.

김범일 대구시장은 최근 기자 간담회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다”고 전제한 뒤 “지역이 낳은 전직 대통령인 만큼 생가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은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달 초 여희광 기획관리실장이 생가 관리 방침을 밝힌 뒤 논란이 계속되자 시장이 나선 것이다.

대구시가 갑자기 생가 관리 문제를 꺼낸 이유는 무엇일까. 시는 2007년 동구의 생가 정비 예산지원 요청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동구는 당시 이를 정비해 관광자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시는 생가를 다녀온 많은 사람이 관리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전직 대통령의 생가가 방치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전직 대통령의 생가는 해당 지자체에서 관리하고 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시는 폭이 좁은 생가 진입로 2.3㎞를 확장하고 관람객을 위한 주차장을 만드는 등 시설 확충에 100억원 가량의 사업비가 들어갈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속뜻은 대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노 전 대통령을 예우해 SK그룹의 투자를 끌어내려 한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장녀인 소영(49·‘아트센터 나비’관장)씨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부인이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은 소영씨를 특임교수로 초빙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대구시 관계자는 “대기업 유치가 지역의 현안인 만큼 SK그룹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면 투자를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반대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쿠데타의 주역일 뿐 아니라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해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이유에서다. 시민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느닷없이 시가 나선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대구경실련 조광현(49) 사무처장은 “투자를 유치하려면 기업 하기 좋은 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생가 관리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대구시는 비판 여론이 일자 도로 확장과 주차장 건립은 연기하고 건물만 관리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글=홍권삼 기자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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