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 챔피언십] 이 많은 눈 이겨내는 자, 그가 챔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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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골프 대회 마지막 라운드 챔피언 조에서 우승 경쟁을 하는 선수는 극심한 긴장감 속에서 경기한다.

마르틴 카이메르(독일)가 16일(한국시간) PGA 챔피언십 최종일 연장 세 번째 홀인 18번 홀(파4500야드)에서 구름 갤러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두 번째 샷을 하고 있다. 버바 웟슨(미국)을 꺾고 우승한 카이메르는 “이상하게도 연장에서 긴장하지 않아 우승할 수 있었다”고말했다. [콜러(미국 위스콘신주) AFP=연합뉴스]

특히 전성기의 타이거 우즈나 국내 여자 투어에서의 신지애 등 최강자와 한 조에서 경기할 때 부담감은 극도로 커진다.

생애 첫 메이저 우승을 한 카이메르(위쪽 사진). 마지막 날 챔피언 조에서 출발했지만 우승을 놓친 닉 와트니(왼쪽)와 더스틴 존슨(아래 사진). [콜러(미국 위스콘신주) 로이터·AP=연합뉴스]

미국 시카고 트리뷴은 “우즈와 챔피언 조에서 경기하는 것은 마취를 하지 않고 절개 수술을 받는 것과 같은 공포”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런 공포 속에서 경기하는 선수들은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참혹하게 무너지곤 한다. 선수들은 이를 ‘챔피언 조의 악몽’이라고 한다. 박원 J골프 해설위원은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온몸에 가득하기 때문에 근육이 굳어버려 평소처럼 스윙을 하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못하면 절대 안 된다는 부정적인 생각도 근육을 마비시킨다.

골퍼들이 간절히 우승을 원하는 메이저대회의 부담감은 일반대회보다 훨씬 크다. PGA 투어 7승을 한 뚝심의 최경주(40)도 2008년 브리티시 오픈 4라운드 챔피언 조에서 9오버파를 친 일이 있다. 당시 최경주와 챔피언 조에서 경기한 그레그 노먼(호주) 역시 7오버파를 쳤다. 그 덕에 우승컵은 앞 조에서 경기한 파드레이그 해링턴이 가져갔다.

16일(한국시간) 미국 위스콘신주 콜러의 휘슬링 스트레이츠 골프장(파72·7507야드)에서 끝난 PGA 챔피언십에서도 그랬다. 3타 차 단독 선두로 출발한 닉 와트니(29·미국)는 첫 티샷부터 벙커와 러프를 왔다갔다하더니 더블보기를 했다.

전날까지 13언더파의 완벽한 경기를 하던 그는 15번 홀이 끝났을 때 11타를 잃고 완전히 백기를 들었다. 그는 막판 16, 17번 홀에서 잇따라 버디를 잡았지만 최종일 성적은 9오버파 81타였다. 와트니와 함께 챔피언 조에서 경기한 더스틴 존슨(26·미국)도 비슷한 악몽을 꾸었다. 두 달 전 열린 US오픈 최종 라운드에서 선두로 출발했다가 11오버파 82타를 치며 무너져내린 일이다. 이번 PGA챔피언십에서는 잘 버티는 듯했다. 17번 홀까지 두 타를 줄여 한 타 차 선두였다. 그러나 마지막 홀에서 무너져내렸다. 평소엔 충분히 넣을 수 있는 1.5m짜리 파 퍼트를 넣지 못했다. 그는 보기 퍼트를 홀에 넣고 연장을 준비했다. 그러나 보기가 아니라 트리플 보기였다. 두 번째 샷을 친 벙커에서 어드레스했기 때문에 2벌타까지 받아야 했다. 존슨은 “거기가 벙커인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는 말이다.

유명 선수들도 마지막 라운드 챔피언 조에선 다리가 떨린다고 한다. 그레그 노먼은 메이저 대회 우승을 앞두고는 16번 홀쯤 되면 공을 오른쪽으로 쳤다. 관중석이나 개울 등으로 날린 샷이 허다했다. 그는 메이저대회에서 톱 10에 30번 들었지만 우승은 2번뿐이었다. 어니 엘스는 타이거 우즈에게 8타 역전패를 당한 후 우즈만 보면 겁을 내고 공을 물에 빠뜨리곤 했다.


그래서 지난해 타이거 우즈를 꺾고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양용은(38)의 업적은 돋보인다. 양용은과 일본 투어에서 함께 뛰었던 김종덕(49)은 “이것저것 재지 않고 한 샷만 생각하는 털털한 성격 덕분”이라고 말했다.

올해 PGA 챔피언십 우승은 마르틴 카이메르(25·독일)가 했다. 챔피언 조에서 무너져 준 덕에 최종 합계 11언더파로 버바 웟슨(32·미국)과 동타를 이룬 후 연장에서 한 타를 앞서 우승컵을 들었다. 노승열(19·타이틀리스트)은 2언더파 28위, 최경주는 이븐파 39위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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