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카 연주 … 서양화가 … '팔방 CEO'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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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최고경영자(CEO)로 구성된 한국CEO포럼의 정기 세미나 개회식이 열린 지난 9월 12일 저녁 제주 신라호텔 야외행사장. 다소 엄숙한 분위기를 깨고 프랑스 영화 '마농의 샘'에서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던 베르디 오페라 '운명의 힘' 서곡이 하모니카 연주를 통해 가을 밤 하늘에 울러퍼졌다. CEO포럼의 공동회장을 맡고 있는 GE코리아 강석진(63·사진)회장이 인사말을 마친 뒤 즉석 연주를 자청한 것이다.

姜회장은 '재주꾼'이다.웬만한 곡은 몇번만 들으면 악보를 보지 않고도 하모니카 연주가 가능하다. 또 서양화가이기도 하다. 30여년 전 취미 삼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 40평 규모의 '필운아뜨리에'란 개인 화실도 운영하고 있다. 한국미술협회 등 4개 미술단체의 회원이기도 하다.

姜회장은 "전문가 이상으로 열심히 하는 데 '취미삼아 그림을 그린다'는 소리를 들으면 은근히 기분이 나빠진다"며 웃었다.

이처럼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지만 사업적 재능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GE에서 잭 웰치를 빼놓고는 이야기가 안되듯이 GE코리아에서 姜회장은 잭 웰치와 같은 존재다. 1973년 GE코리아와 인연을 맺은 그는 81년부터 GE코리아 사장을 지내다 올해 5월 회장으로 승진했다.

"대우전자의 전신인 대한전선에서 수출업무를 담당하면서 개발한 고객이 GE였죠. 참 우연한 만남이었는 데 벌써 3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GE코리아의 한국 사업은 모두 姜회장의 손끝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姜회장이 사장에 취임했던 81년 GE코리아는 직원 7명에 사업규모는 연간 2천2백만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직원 1천2백여명에 사업규모가 40억달러에 달한다.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 것이다.

삼성·동양 등과 4개 합작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GE코리아의 한국 내 자회사만 16개에 이른다. 웬만한 중견그룹 이상의 규모다.

姜회장은 이번 연말이면 30년간 일했던 GE에서 정년퇴임한다.그는 "일에 쫓겨 다소 소홀했던 미술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계획"이라고 말했지만 그 또한 쉽지 않을 것같다. 현직·퇴직 최고경영자들이 모여 벤처·중소기업에 경영노하우를 전수하는 'CEO컨설팅 그룹'이 곧 출범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리더는 물론 姜회장이다.

"GE에서 터득한 경영 노하우를 어려움을 겪고 있는 벤처·중소기업에 전수할 계획입니다. 미술에 시간을 할애하기는 더 어려워질 수 있겠지만 제 도움이 필요한 기업이 있다면 언제든 달려갈 겁니다."

김준현 기자

takeit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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