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한·일회담] "과거사 청산 차원 해결책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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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서울 용산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사무실. 한·일 협정 문서가 공개되자희생자 유족들이 사무실에 몰려와 피해보상에 대해 문의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한.일 협정 문서에서 한국 정부가 개인 청구권을 포기한 사실 등이 드러남에 따라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권리 찾기를 위해 법적 구제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 군이나 군속, 근로자로 강제 동원됐거나 종군위안부로 징발됐던 이른바 정신대 피해자들이 소송을 통해 일본 정부로부터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일본 정부와 일본 최고재판소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한국인 개인의 보상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고문 변호사인 장유식 변호사는 18일 "소송보다는 한.일 정부가 과거사 청산 차원에서 포괄적 해결책을 내놓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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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지는 소송=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등 일제의 징용 피해자 단체들은 18일 일본 정부나 기업이 한국인 근로자들에게 지급하지 않은 임금과 후생연금(보험금이나 연금 명목으로 거둔 돈)에 대한 반환청구 소송을 일본 법원에 각각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불 임금과 후생연금 소송은 강제동원이라는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청구가 아니라 일본 정부 또는 기업에 노역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라는 게 유족회 측의 주장이다.

유족회 측은 전후 보상협상을 잘못한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지금까지 일제 징용 피해자들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낸 적은 없다.

이와 함께 75년과 77년 한국 정부가 징용 피해자 8000여명에게 30만원씩 보상금을 지급한 것에 대해서는 당시 보상을 받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1~2명을 골라 시험 소송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시험 소송에서 승소할 경우 해당 피해자들이 집단으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이다.

피해자 단체들은 일본 정부가 협정 체결 당시 지원한 자금이 개인청구권 소멸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경제협력자금이라고 주장한 점 등을 들어 보상 책임이 있다는 논리를 펼 계획이다.

◆ 개인 청구권 인정될까=소송 승패의 관건은 민법상 채권의 소멸시효(10년) 경과 여부 및 개인 청구권의 인정 여부다.

시효 문제의 경우 피해자 단체들은 한.일협정 문서가 이제서야 공개돼 소송을 내게 됐다는 점을 재판 과정에서 부각하면 전향적 판결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문서 공개를 통해 한.일협정에 따른 보상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한.일 정부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2003년 수지 김 유족에 대한 피해보상 사건에서 법원이 청구권 시효를 배제, 42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사례가 있다.

국제법학자인 박배근 부산대 법대 교수는 "국가(한국정부)가 개인의 보상청구권을 소멸시킬 수 없는 데다 일본 정부는 협정 체결 당시 보상금이 경제협력자금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보상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일제치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는 "일본의 미쓰비시(三菱)중공업에 강제로 징용됐던 사람 중 46명이 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 판결이 19일 히로시마(廣島) 고등법원에서 열린다"고 18일 밝혔다.

미쓰비시 징용자 동지회는 95년 임금 체불 등을 이유로 히로시마 지방법원에 소송을 내 1심에서 패소했다. 1심 재판부는 "태평양전쟁 당시 부당한 국가공권력 행사에 의한 책임을 기업에 물을 수는 없으며, 민법상 소멸시효도 지났다"고 판시했다.

조강수.천인성 기자 <pinejo@joongna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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