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제3의 천안문 사태 막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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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중국 지도부가 제3의 천안문 사태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지난 17일 자오쯔양(趙紫陽) 전 공산당 총서기의 사망 뒤 베이징(北京)은 표면상 평온하다. 하지만 속으론 긴장이 팽팽하게 흐르고 있다.

반정부 단체와 일부 네티즌은 "자오의 생애와 천안문 사태를 재평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천안문 광장에선 1976년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의 사망(제1 천안문 사태), 89년 후야오방(胡耀邦) 전 당 총서기의 사망을 계기로 두 차례나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우선 관심이 쏠리는 것은 자오의 장례식이 어떤 식으로 치러지느냐다. 중국 지도부가 사후 처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또 다른 시위나 사회 불안이 생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홍콩의 중국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일단 자오의 장례식을 '내부 행사, 낮은 격식, 좁은 범위'로 제한할 방침이다. 유족들은 "푸창(富强) 골목의 자택에 빈소가 설치됐으나 화장 절차와 추도회는 우리 손을 떠났다"고 밝혔다. 또 유족들은 정부에 국장을 요구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일부 친척과 퇴직 관료의 문상만 허용되고 있다. 빈소 앞에는 조화 5~6개가 있을 뿐이다.

중국 지도부는 "자오 선생은 인민과 당을 위해 유리한 일을 했으나 엄중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내부 입장을 정리했다.

그래서 언론에 재갈을 물렸다. 관영 매체인 인민일보 등 모든 신문은 17일 눈길이 가지 않는 지면에 50~60자의 짧은 기사를 실었다. TV.라디오는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중국에 수입된 외국 신문들은 사망기사가 실린 면이 통째로 찢겨 없어진 채 배달됐다. 한 관계자는 "외국 신문을 관리하는 중국도서수출입총공사가 공안의 통보를 받아 사망기사가 실린 신문을 회수하려 했다"고 전하고 "그러나 결국엔 관련 면을 찢는 조건으로 통관이 허락됐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천안문 광장엔 경비 병력이 늘어났다. 홍콩 언론은 "그의 비서였던 바오퉁은 장례.추모식을 준비하기 위해 자택을 나서다 저지당했다"고 밝혔다.

자오와 같은 시대를 호흡했던 20여명의 당.정.군 원로가 "자오의 명예회복과 함께 국가 지도자에 걸맞은 장례식과 추도회를 열게 해달라"는 탄원서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런민왕(人民網).신화왕(新華網) 등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지난 17일 "압력을 받는 추모의 힘은 더욱 강할 것" "인민은 그대를 잊지 않을 것" "역사가 공정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는 글이 실렸다. 베이징 대학의 토론 사이트에는 18일 오전 자오의 사망 소식이 10대 화제의 1위에 올라 있으나 접속 불능 상태다. 홍콩 언론은 "자오의 글을 싣는 네티즌과 이를 삭제하는 검열 당국의 공방전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쩡칭훙(曾慶紅.당 서열 5위) 국가부주석이 지난 17일 자오가 임종하기 직전 그를 문병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핵심 측근이자 상하이방(上海幇)의 간판 인물이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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