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문화의 '달콤한 지배' 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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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주도하는 담론의 지배구조 속에서 가장 강력한 소수 의견을 산출해내는 대항 매체는 프랑스의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다.

미국 중심의 패권주의적 목소리에 '아니올시다'하고 지적하는 비판 행위의 맨 앞줄에 서 있다는 점이 그렇고, 그 매체가 유지하는 지성의 높이 역시 마찬가지다. 사정이 그러하니 이 매체의 편집장 이냐시오 라모네(59·사진)의 책 『소리없는 프로파간다』가 담고 있는 내용은 책을 보지 않아도 대강은 짐작할 수 있다.

파리 7대학 교수이기도 한 라모네가 책에서 내내 강조하는 것은 현재 미국의 헤게모니는 '달콤한 독재' '상냥한 압제'를 통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펜타곤은 프랑스의 총 국방예산과 유사한 3백10억달러를 군사 연구비 명목으로만 쓰고 있고, 뉴욕 증시 딸꾹질 한번에 세계금융 시장이 전율할 정도로 경제력을 자랑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대목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다름아닌 영화 등 문화산업을 꽉 쥔 '카리스마적 지배'를 통해 세계의 마음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정보력·지식력에 의지해 '좋은 말'을 퍼뜨리면서 피지배자들의 수동적인 공모와 함께 상냥한 압제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이 부드러운 체하는 권력이 문화산업의 통제와 우리 상상계의 지배와 겹칠 때 그렇다."(42쪽) 따라서 라모네가 이 책에서 하는 비판작업은 그가 '눈으로 씹는 추잉껌', 혹은 '눈을 위한 사탕과자'로 부르는 영화·TV 광고 등 영상물 종류에 집중된다.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 '지옥의 묵시록' '타이타닉' '에어포트 80'등 우리가 보아온 할리우드 영화는 거의 모두가 책에 등장한다. 대형의 재난영화는 물론 마카로니 웨스턴으로 통칭되는 이탈리아의 서부영화, 그리고 코미디물에까지 라모네는 메스를 들이댄다.

따라서 기왕에 독서시장에 선보였던 다양한 각도의 영화 읽기 유(類)의 책들을 연상할 수 있지만, 그렇지는 않다.

특정 영화에 대한 라모네 식의 코멘트를 단답형으로 덧붙이기보다는 이 저자 특유의 조롱과 야유가 얼버무려진 문체로 미국의 달콤한 비판에 시종일관 초점을 맞추며 자기만의 호흡의 글을 선보인다.

따라서 이 책 전체는 매 영화들에 스며든 '즐거운 세뇌'와 '자발적 유혹'의 구조, 그 내부의 미국 패권주의를 폭로하는 작업에 충실하다. 우리말 번역은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조우석 기자

wow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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