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수 '빅리거' 꿈★ 이루어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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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왼쪽 윙백으로 불리는 브라질의 호베르투 카를루스(레알 마드리드)는 시속 1백50㎞를 넘나드는 '광속구' 프리킥으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카를루스의 진가는 경기마다 20∼30회씩 구사하는 오버래핑 플레이(윙백이 사이드라인을 따라 상대 진영 골라인까지 치고들어가는 플레이) 때문이다.

카를루스가 하프라인을 넘어섰다는 것은 상대 골문이 사정권에 들어왔다는 의미다.

그런 카를루스가 20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한국과의 평가전에서는 좀처럼 하프라인을 넘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자기가 맡아야 하는 이천수(22·울산 현대)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이날 한국팀 삼각 공격편대의 오른쪽 날개로 출전한 이천수는 쉴새없이 브라질 진영 오른쪽 측면을 파고들었다.

특히 사이드라인에서 공을 잡은 이천수는 카를루스를 등진 상황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카를루스를 제치면 치고올라가 크로스를 올렸고, 제치지 못하면 공을 빼앗기기 전 동료에게 연결했다.

카를루스에게 빼앗기는 법이 없었다. 카를루스가 공을 잡을 때면 이천수가 어김없이 1차 저지선이 됐다. 그 뒤에는 송종국이 버티고 있었다.

이천수가 무시로 공을 몰고 들어오는 데다 공을 잡고 올라가려면 이천수-송종국의 겹수비가 막아서니 카를루스로서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오버래핑 플레이를 도무지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경기가 끝난 뒤 카를루스는 '한국팀에서 가장 인상적인 선수'를 묻자 주저없이 "등번호 14번(이천수)"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천수에 대해 "월드컵 때는 후보로 뛰는 것을 봤다"며 "오늘은 주전으로 나왔는데 스피드와 체력이 대단했다"고 평가했다.

마리오 자갈로 브라질 감독 역시 경기 직후 "한국 선수 모두 체력·스피드가 뛰어나 인상적이었다"면서도 "굳이 한 선수를 꼽으라면 14번"이라고 대답했다.

이천수는 월드컵 직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사우샘프턴 입단 직전까지 갔다가 K-리그에 잔류한 바 있다.

그러나 이천수는 올 시즌 내내 "스페인리그로 진출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이날 경기장에는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스카우트들이 상당수 찾아와 '싹수 있는' 선수들을 파악하기에 바빴다.

카를루스를 상대로 진가를 발휘한 이천수가 자신의 꿈인 '빅리그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한 셈이다.

장혜수 기자

hsc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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