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빅리그 "A매치 싫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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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한국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G14(유럽 프로축구 18개 명문구단 모임)회의는 국제축구연맹(FIFA)에 대한 성토장으로 변했다.

이들은 "유명 선수들이 A매치(국가대표간 경기)에 너무 자주 차출된다. 엄청난 돈을 주고 데려온 선수가 부상하거나 컨디션이 나빠지면 누가 책임지느냐. 장사 속에 혈안이 된 FIFA가 월드컵도 모자라 A매치 데이까지 만들어 선수들을 빼가고 있다"고 언성을 높였다.

이들은 "앞으로 A매치에 차출되는 선수에 대해서는 각국 축구협회가 구단에 임대료와 보험료를 내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어 FIFA에 제출하자"고 결의했다.

20일은 FIFA가 정한 'A매치 데이'로 지구촌 곳곳에서 24경기가 벌어진다. A매치 데이는 대략 2∼3개월에 한번씩이다. 이 가운데 유럽 클럽들이 가장 불평을 터뜨리는 경기가 한국-브라질, 일본-아르헨티나 경기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대표선수들은 왕복 30시간에 육박하는 장거리 비행기 여행을 해야 한다.

특히 24일 숙명의 라이벌전을 벌여야 하는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는 혹시라도 주전들이 다칠까봐 속을 끓이고 있다.

브라질의 호나우두·호베르투 카를루스·플라비우 콘세이상이 마드리드 소속이고 아르헨티나의 리켈메·사비올라·보나노는 바르셀로나 소속이다.

24일 '밀라노 더비'(밀라노 팀끼리의 대결)를 앞두고 있는 인터 밀란과 AC 밀란도 불만이 폭발 직전이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3명을 차출당한 인터 밀란은 "AC 밀란의 에이스인 히바우두가 브라질 대표팀에 뽑히지 않은 게 수상하다"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네덜란드 페예노르트가 송종국을 보내주지 않으려고 기를 썼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송종국은 지난 17일 소속팀 경기를 마치자마자 비행기로 10여시간을 날아와 18일 오후 파주 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서 회복훈련을 했다.

대한축구협회는 FIFA 규정을 앞세워 송종국을 보내달라고 당당히 요구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축구협회가 페예노르트 구단에 "임대료와 보험료를 낼테니 제발 좀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겠다.

정영재 기자

jerry@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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