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한·일회담] 정치권·전문가 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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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태평양 전쟁 희생자 유가족이 17일 서울 광화문 외교통상부 앞에서 부친의 일본군 시절 사진을 들고 침묵 시위를 벌이고 있다.[최정동 기자]

정치권은 정부의 한.일 협정 문서공개가 국민의 알권리 충족 및 피해자 권리 회복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경제발전을 위해 개인의 권리를 침해당한 일제시대 피해자와 유가족들에 대한 보상 등 후속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문서 공개와 연계한 과거사 규명 문제를 놓고 대립적 시각을 보였다.

학계는 한.일 협정 체결 당시 '졸속 협상'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해 당사자들의 국가 상대 소송이 잇따라 제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열린우리당 임채정 의장은 17일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배상을 받아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보상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일괄보상하는 등 문제가 될 부분이 있다"면서 "앞으로 그런 문제에 대해 이해당사자들과 협의를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후속 대책과 관련, '고위 당정협의'를 열거나 '별도의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키로 했다.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들은 문서공개를 계기로 과거사 규명 문제를 본격화하자는 주장을 제기했다. 김덕규 국회부의장은 "문서가 공개되더라도 청산되지 못한 과거사 문제가 있는 만큼 이에 대해서도 정리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문서공개가 피해자 개인의 권리를 회복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문서 공개가 과거사 규명을 주도하는 정치세력에 의해 악용돼서는 안 된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전여옥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문서 공개가 협정으로 피해를 본 개인의 권리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홍준표 의원은 "특정 정치세력이 문서 공개를 과거사 진상 규명과 연계할 의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노당은 한.일 협정 문서의 전면 공개를 요구하면서 재협상을 촉구했다. 민노당 홍승하 대변인은 논평에서 "정부는 피해자 보상금 사용내역을 공개하고 일본 정부와 개인청구권 등에 대한 재협상과 함께 보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학계도 협상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서진영 고려대 교수는 "협상 당시 청구권이 식민지배에 대한 피해 보상이란 점을 명문화하지 못해 일제의 지배를 합법화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현백 성균관대 교수도 "졸속으로 이뤄진 한.일 협상은 역사적 정당성을 상당 부분 손상시켰다"며 "특히 독재정부가 정확하게 과거 청산을 안한 게 가장 큰 과오"라고 지적했다.

학계 일각에서는 일제 때 피해자 및 이해당사자들의 개별적 소송에 앞선 정부의 대책 마련을 거론했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교수는 "경제발전을 위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 일제 피해자 등에 대한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덕민 외교안보원 교수도 "징용자 및 정신대 등 일제 때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제기한 소송이 잇따르면서 재협상 얘기가 많이 나올 것"이라며 "개인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바람에 이중피해를 본 일제 당시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 보상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철희.전진배 기자<chlee@joongna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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