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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들기기만 하면 되나 다양한 감동 줘야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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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면

뮤지컬 퍼포먼스 '도깨비 스톰'(12월 14일∼2003년 2월 16일·정동극장)은 중고(中古)형 신작이다. 지난해 1월 초연한 후 그해 9월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다녀오는 등 꽤 알려진 작품이지만, 비슷한 성격의 '난타'처럼 대중들에게서 화끈한 관심을 끌지 못해 소문없이 사라져야 할 판이었다.

이처럼 궁지에 몰린 것을 맨들맨들 광을 내 새 작품으로 살려보겠다며 연출가 윤영선(48·연극원 교수)씨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장르가 넌버벌(non-verbal·비언어) 퍼포먼스라고 해서 언어 등 다른 표현방식은 배제하려 들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단조롭게 두드리는 소리(타악) 외에 들을 것도 볼 것도 시원찮았다. 공연은 다양한 기호들이 어울리고 충돌해야 감동을 줄 수 있는데 말이다."

윤씨는 프로젝트 그룹 작은파티 등 동인제 연극활동을 통해 알차고 인상적인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중견 극작·연출가다. 그가 꺼져가던 '도깨비불 살리기'에 나선 것은 두달 전이다. 제작사인 미루스테이지 김성열 대표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여 연극 밖으로 외도를 결심했다.

윤씨가 참여하기 전까지 '도깨비 스톰'은 출연자이기도 한 아티스트 몇명이 아이디어를 짜내 만든 아마추어 수준에 머물렀다. 실력있는 명망가를 초청해 연출을 맡길 만한 돈도 없었지만, 이보다는 '우리끼리 해보자'는 아집이 더 큰 문제였다. 그 사이 관객들은 수준이 뒤따르지 못한 이 작품을 외면했고,일회성 이벤트 행사장을 기웃거려야 했다. '사느냐 죽느냐'의 절박한 순간에 윤씨가 각색·연출을 맡았다.

"공연의 질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사소한 것들이다. 이런 디테일이 강해야 작품의 완성도가 높은 법이다. 지금까지 '도깨비 스톰'은 장면만 있었지 그 장면을 그럴듯하게 엮어 주는 매듭이 약했다. 악기의 배치와 소리의 강약·고저,연기 패턴 등이 평면적이며 단조로웠다."

'도깨비 스톰'은 일상에 찌든 회사원 이대리와 박과장이 이상한 빛에 끌려 도깨비를 만나 한바탕 논 뒤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을 엮은 팬터지다. 이런 초현실과 현실을 오가는 코믹한 과정을 통해 일상탈출을 꿈꾸는 현대인들에게 대리만족을 주겠다는 게 이 작품의 노림수다.

"우리말로 '저놈은 도깨비 같은 놈'이라고 하면 뭔가 엉뚱한 짓을 잘 하지만 밉지 않은 사람을 일컫는다. 근엄과 비천함,혹은 초월적인 세계와 현실의 경계랄까. 그 사이에 우리가 즐겨 들었던 도깨비 전설의 본질과 해학이 숨어 있다. 이번에 그걸 표현하고 싶다."

비록 느슨한 이야기 구조가 있지만 '도깨비 스톰'은 타악 리듬이 주조를 이룬 음악 퍼포먼스다. 항아리에 장구 거죽을 씌운 '항아리 장고'에서부터 양은 개밥그릇까지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 악기로 쓰인다. 도깨비 분장을 한 출연자들은 이것들을 상황에 맞게 신나게 두드리다 갑자기 어루만지는 듯 문지르기도 하며 기묘한 소리를 만들어 낸다. 때에 따라서는 신시사이저의 가공된 소리도 등장한다.

유학시절 뉴욕에서 이런 퓨전예술을 자주 접했던 윤씨는 "타악은 어느 곳에서나 쉽게 통하는 소리언어인 데다 이 작품은 소재가 독특해 잘만 하면 국제무대에서도 승산이 있다"고 자신했다.

그동안 '도깨비 스톰'은 각국의 페스티벌에 여러 차례 참여하는 등 나름대로 상품화를 시도했으나 국제적인 프로모터들이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아 결과는 기대만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 윤씨 외에 한국음악과 서양음악에 모두 능한 이경섭(미추관현악단장)씨가 음악감독을 맡아 완성도에 따라서는 '제2의 난타'로 우뚝 설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상훈·이상호·안경희·최상희·천선영·백운상·유석춘이 출연한다. 매일 오후 7시30분. 02-2068-0657.

정재왈 기자

nicola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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