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한·일회담] 일본서 받은 돈 어디에 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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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공개된 한.일 협정 문서는 우리 정부가 애초부터 일본에서 받은 청구권 자금을 일제 피해자 보상이 아닌 경제 개발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한.일 협정 체결 이후 일본에서 받은 돈은 모두 8억달러다. 협정을 맺은 이듬해인 1966부터 약 10년에 걸쳐 무상자금 3억달러와 유상자금 2억달러, 상업차관 3억달러를 받았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정부가 받은 자금 형태는 대부분 원자재와 자본재 등이었다"고 설명한다.

무상자금은 대부분 '관수용물자대수입' '원자재판매수입'등의 형태로 모두 원화 1077억300만원어치의 물품이 들어왔다. 이 중 일제에 징용당하거나 재산을 빼앗기는 등 직접적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지급된 돈은 9.7%인 103억7000만원(이자 포함)이다.

나머지 90% 가량은 대부분 경제 개발을 위한 비용으로 투입됐다. 농림수산업에 37.4%(402억6600만원)가 들어갔고 종합제철공장(포철) 건설에 16.2%(174억4200만원)를 썼다.

유상자금 역시 광공업 부문에 56.8%(1억1372만5000달러)가 쓰였다. 경부고속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에 42%(8396만6000달러)를 투입했다. 정부 관계자는 "당시 정부가 계획만 세웠을 뿐 실행에 옮길 자금이 부족했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62년 시작)에 이 돈이 긴요하게 쓰였다"고 설명했다.

'대일 청구권 자금의 사용에 관한 방안'(64. 2. 5, 경제기획원)에는 자금 사용 내역과 관련, "무상자금은 수익성이 적거나 자본의 회임 기간이 긴 사업에 투자한다"고 적혀 있다. 구체적으로는 ▶수리관개사업 및 다목적댐 건설▶철도 건설▶철도공작청 건설 확충▶선박 도입▶항만 건설▶도시 상수도 공사▶교량 건설▶수출산업용 중요 산업기계 도입 등이다.

유상자금에 대해서도 "원리금 상환이 가능한, 수익성 있는 사업에 투자한다"고 해 역시 경제 기반 마련에 집중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제 피해 사망자 한 사람당 지급된 돈(약 30만원)은 당시 쌀(80㎏ 한가마당 2만여원) 15가마 정도를 살 수 있어 요즘 쌀값(21만여원)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321만원 정도 된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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