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읊조림이 가슴을 울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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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헤어지던 날 말없이 걸었어…나를 아는 정말 많은 사람 중에, 그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널 찾은 이 없어. 그걸 왜 모르는 거니…추억이 깊을수록 생기 없는 날들이 너무나 힘들어…."(언니네 이발관, '20002년의 시간들' 중에서)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밴드가 부르는 이 노래를 흔한 사랑 노래쯤으로 오해할지 모른다. 언니네 이발관이 가졌던 그 '생기없는 시간'들이 무슨 의미였는지 모른다면 말이다. 언니네 이발관은 이름조차 생소하다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 보면 1993년에 결성된 국내 모던 록 밴드로, 너무 앞서가는 바람에 좌초했던 밴드임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2집 앨범 '후일담'을 내놓았던 것은 98년. 그러나 음반 판매가 워낙 부진해 멤버들은 눈물을 머금고 각자 다른 일을 찾아 흩어졌다. 언니네 이발관을 이끌던 이석원(32·보컬·기타)은 평범한 직장인이 됐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오랫동안 남아 한때 목소리가 안 나와 말조차 제대로 못 했다고 한다.

"앨범을 낸다는 일은 취미활동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1년이란 시간을 두번째 앨범에 바쳤습니다. 허무했지요. 나중엔 그냥 쓸쓸하더라고요. 모든 게…."

이석원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그로부터 3년. 신기하게도 지난해부터 이들의 음반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팬들이 차츰 불어났다. '유리''인상의 별' 등의 곡들이 노래방 선곡 목록에 들어가는 기염(?)을 토했다. 리더 이석원은 다시 힘을 찾았다. 재즈밴드 출신 정무진(29·베이스)·이능룡(25·리드 기타), 메탈 밴드 출신 전대정(25·드럼) 등으로 멤버를 모아 재정비했다. 다시 1년간의 준비 끝에 3집 앨범인 '꿈의 팝송'을 최근 선보였다. 굳이 그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기적적 회생'임에 분명하다.

"모든 걸 여기에 다 걸었습니다. 우리 모두 다요. 저(이석원)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고, 정무진은 다니던 학교(단국대 도예과4)를 자퇴했고, 이능룡은 휴학(서울시립대 영문과)했습니다. 후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배수진이 비장하다. 최근 교보문고(핫트랙스)·코엑스 등에서 연 쇼케이스엔 1천여명이 넘게 몰렸다. 팬들에게 사인해주는 데만 세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일본에서 찾아온 열렬팬도 있었고,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도 적잖았다. "우리도 전혀 예상치 못했을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용기를 낸 것이 12월 12일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릴 콘서트다. 티켓은 12일 저녁 단 하루 만에 60% 넘게 팔렸다.

도대체 어떤 음악이기에? 록·펑크·팝·포크·테크노 등 다양한 장르가 녹아있지만 한마디로 기존의 록하고는 거리가 멀다. "꽝꽝거리는 음악에 소리지르는 것만이 록은 아닙니다. 록의 고정관념을 깨보고 싶어요. 소리치는 것보다 나지막한 읊조림이 더 가슴을 울린다는 것을 보여줄 겁니다"(이석원)라는 설명이다.

밝지도 않지만 그리 어둡지도 않은 묘한 양면적 감성이 이들의 색깔인 듯하다. 젊은 꿈은 이어진다. "지상파 방송에 나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고 입을 모은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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