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교육 "日도 마찬가지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1면

"교육 망치는 주범 교육인적자원부를 없애라" "서울대 법대 졸업생은 기초 교양조차 없어 문제다." 이런 글을 쓰거나 강연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본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는 이런 기고와 강연을 모아 책을 냈다. 물론 "문부성을 없애자" "도쿄대생은 사상과 문화가 없다"는 주장인데 각종 자료와 체험을 동원해 원인을 짚고 처방을 제시한다. 책의 부제대로 '지적(知的) 망국론'과 '현대 교양론'이 어우러진 내용이다.

# 교육,이대론 안된다

다치바나가 보는 일본 고등교육의 현실은 참담하다. 수 백명씩 모아 교과서 수준의 강의를, 그나마 학생의 창의적 이견은 엄금한 채 주입식 법률강의만 하는 도쿄대 법학부는 '찻잔'만 양산해 왔다고 질타한다. 학생이라는 이름의 찻잔에, 그 고유의 모양과 용량은 무시하고 주전자로 찻물을 들이붓듯 교육한다는 야유다.

일본 최고수준이라는 도쿄대 이과생들도 나을 게 없다. 8백31㎞ 떨어진 도쿄와 삿포로의 직선거리를 31㎞라고 답하는가 하면 지구둘레의 길이도 터무니없이 추산한다. 뉴턴의 역학도 모른 채 기계공학을 전공하려 하고, 의사지망생 중엔 고교시절 생물과목을 배우지 않아 중학생 수준의 생물지식을 지닌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러니 전공학부에선 뒤늦게 수준별로 분반을 한다, 보충학습을 한다며 야단이다.

저자는 이것이 문부성 탓이라고 진단한다. 1980년대 이후 수험생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분으로 '융통성 있는 교육'을 실시한 것이 심각한 학력저하 현상을 일으켰다고 지적한다. 고교 이수과목을 줄이고 대입수험과목을 대학별 학과별로 자율화했으니 고교생들이 폭넓은 지식을 쌓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일본교육의 본질이란다. 암기 중심의 한자교육에 뿌리를 두고, 서구 근대문명을 하루빨리 따라잡기 위해 시작된 국립대학이 오늘날 교육 문제의 화근이라는 지적이다. 필요한 인재를 키우기 위해 국가 주도의 획일적 교육을 실시하다 보니 창조성의 결여, 강자에게 허리를 굽히는 나약함, 법률·전례 만능주의 등 일본인의 지적 폐해를 불러왔다고 꼬집는다.

# 교양부터 쌓아라

일본 교육현실에 대한 다치바나의 처방은 다양하다. 대입시험에 사전 등 자료를 지참토록 해 암기부담을 덜어주고 창의성을 시험하자든지, 도쿄대생 일부를 제비뽑기로도 뽑아 입시의 다양성을 확보하자는 제안이 그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내놓은 근본처방은 교양교육의 강화 쪽이다. 앞으로 스페셜리스트시대가 올 것이란 일반론과 달리 그는 높은 의미의 제너럴리스트가 필요하다는 근거에서다. 그러기 위해선 문제를 찾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자신의 머리를 가진 수재'를 키워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교양교육이 필수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다치바나의 교양은 그 의미가 '현대사회에서의'란 단서가 붙긴 하지만 통념과는 거리가 있다. 물론 "인류의 지적 유산에 대한 동시대의 상식이 교양의 최소치"라는 데는 공감하지만 이른바 고전을 통해 동서양의 역사·문화를 두루 섭렵한 사람을 교양인이라 부르는 것은 "기성세대의 푸념"이라고 일축한다.

그에 따르면 교양이란 현대사회를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며 조사, 정보정리 능력, 문서작성과 인터넷을 이용한 발신능력이야말로 현대인이 갖춰야 할 교양이라 한다. 구체적으로는 문제발견 능력, 거짓과 오류를 발견하기 위한 오류론·궤변론, 커뮤니케이터로서의 능력, 팀 활용 능력 등을 꼽는다. 특히 현대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과학지식을 강조하면서 뇌과학과 생명공학을 교양의 필수요소로 들고 있다.

다치바나는 이런 현대 교양이 상식백과 등 책 한 권을 독파하는 것으론 얻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결국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이란 부제로 지난해 출간되어 눈길을 끌었던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교양』 (들녘)-역사·문학·언어 등 인문학 위주다-류의 서적으론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대신 닛케이(日經)신문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지 알아 보고 대형서점의 책 목록을 모두 읽은 후 '지적 세계의 지도'를 장만하라고 충고한다.

# 어떻게 할 것인가

다치바나는 도쿄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문예춘추 기자를 하다 다시 철학과를 다녔다. 저술가로, 독서가로 이름을 얻은 뒤에는 모교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현실감이 있는 그의 글을 읽으면 섬뜩하다.

서울대 공대에 미적분을 제대로 모르는 학생이 진학하고, 대학 도서관 대출 베스트 도서는 대중소설이 주류인 반면 대학에서 고시학원으로 직행하는 경우가 늘고, 일단 대학에 들어가면 졸업이 되니 놀고 보자는 풍조가 만연한 우리 현실과 그대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올 대학수능시험 직후에도 예상점수가 오락가락하다 결국 학력저하론이 나온 형편이니 말이다.

그는 현행 일본식 교육은 선진국을 따라잡는 데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선진국과 경쟁할 단계에 이르면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강조한다. 또 문부성이 이끄는 '지적(知的) 망국'의 길을 걷다가는 일본은 앞으로 반세기 정도는 죽을 힘을 다해 선두 그룹을 따라잡아야 하는 비참한 국가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우리는 어떤가?

김성희 기자 jaeja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