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신-초단 "붙어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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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신(入神)'이라 불리는 '9단'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아우성이다. 9단 잡는 저단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세돌3단·박영훈3단 등은 타이틀 보유자가 됐으니 더 말할 게 없고 박진솔초단은 프로입단 2개월 만에 세계대회인 삼성화재배 본선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정말 9단이 그리 만만할까.

이창호9단·조훈현9단·서봉수9단·유창혁9단·루이나이웨이(芮乃偉)9단 등 9단 10명과 이영구초단·김선호초단·윤준상초단·박진솔초단·강동윤초단 등 초단 10명이 호선으로 대결하는 제1회 브레인트로피아닷컴배가 16일 한국기원 바둑TV 스튜디오에서에서 개막된다.

초단이 부족해 와일드카드로 3단이 한명 끼여 있어 입신과 수졸의 대결이란 말은 약간 퇴색했지만 9단들이 초단들과의 이런 대결에 응했다는 사실만으로로도 세상이 변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속말로 이기면 본전이고 지면 망신인 시합인데도 9단들 사이에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가 일어난 것이 재미있다. 타이틀보유자가 총출동해 최강의 팀을 구성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초단은 일명 수졸(守拙)이라 부른다. 졸렬하지만 근근이 지킬 줄 안다는 의미다. 수졸 다음에 약우(若愚·2단), 투력(鬪力·3단), 소교(小巧·4단), 용지(用智·5단), 통유(通幽·6단), 구체(具體·7단), 좌조(座照·8단)를 거쳐 맨 마지막이 9단인 입신이다. 어리석고 힘만 알다가 작은 재주를 거쳐 지혜를 쓸 줄 알고 그윽한 경지에 닿아 바둑의 형상이 제대로 그려지면 앉아서도 훤히 보이고 그리하여 신의 경지에 들어선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바둑계는 이같은 단계가 확연히 무너져 입신과 수졸 각 10명이 호선으로 대결하는데도 결과가 궁금해지는 정도가 됐다.

우승팀엔 6천만원의 상금과 대국료, 패배한 팀은 대국료만 받는다. 16일의 첫판은 김일환9단과 허영호초단, 이창호9단은 박진솔초단과 만났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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