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국가경쟁력은 과학에 있다" : 한국과학기술원 이상엽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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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노벨상,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지만 이대로는 꿈에 불과합니다. "

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한 아시아 기술혁신 분야에서 차세대 리더로 뽑힌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상엽(李相燁·38·생명화학공학)교수. 자신이 생명공학 분야에서 세계 수준에 올라 있기 때문일까. 李교수는 한국 과학의 현주소에 대해 서슴지 않고 비관적인 평가를 내렸다.

"우리에겐 분명 무한한 가능성이 있지만 창의력을 무시하는 현행 교육 풍토가 노벨상의 꿈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공계 학생들은 밤새워 연구에 몰두해도 돌아오는 게 작고, 구조조정을 할 때는 가장 먼저 내몰리는 현실을 두려워합니다. "

이런 현실에서 이미 세계적인 생명공학 분야의 권위자로 떠오른 그의 업적이 돋보인다. 그의 명성은 당장 세계인명사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후즈후(who's who) 본판과 인터내셔널 후즈후 전문가판은 물론 배런스 후즈후에도 그는 21세기 생명공학 분야를 이끌 지도자로 기록돼 있다.

李교수가 유명해진 것은 생명공학 관련 논문이 2백여편에 이르기 때문인데 상당수가 의학에 당장 응용될 수 있는 연구다. 그는 특히 "광학적으로 순수한 정밀화학물질군을 생산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개발해 선진국에 특허를 낸 것은 매우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이 기술은 현재 카이로바이오라는 벤처회사에서 상용화를 진행 중이다.

서울대를 나와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개발한 생분해성 플라스틱 원료 제조 기술은 8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생산효율을 자랑한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시장만 형성되면 우리가 지배할 것으로 기대되는 분야다. 2000년에 개발한 윌슨병 유전자칩 진단 키트는 이미 초기 임상시험을 마치고 다른 유전병도 진단할 수 있는 다(多)질환 유전자(DNA)칩을 개발하는 단계다.

李교수가 국내 기초과학 분야에서 가장 노벨상에 근접한 젊은 과학자로 통하는 것도 이런 업적 때문이다. 그의 저력은 그칠 줄 모르는 지적 탐구심에서 나온다. 다른 과학자가 쓴 논문을 읽을 때도, 실험 결과를 놓고 토론할 때도, 일상생활에서도 시각을 고정시키지 않고 다른 각도에서도 생각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는다.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 '바이오케미컬 엔지니어링 저널'의 부편집인이기도 한 李교수는 "앞으로 국가경쟁력은 모든 산업의 근간인 과학기술에 있다"며 "이공계 학생들은 긍지를 갖고, 정부와 기업은 그들의 노력에 상응하는 대접과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호 경제연구소 기자

e-news@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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