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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별 중복업무 찾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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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부조직 개편에 대한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대통령 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정부조직 개편을 공약으로 제시해 누가 집권하든 공직사회에 한 차례 회오리가 불어닥칠 전망이다.

이에 보건복지부·정보통신부 등 중앙 정부 기관들은 부처 존립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줄 보고서 용역사업을 잇따라 발주하는 등 살길 찾기에 분주하다.

그러나 이 같은 종류의 보고서는 부처 이해에 근거해 만들어져 새 정부 출범 초기 정부조직개편을 둘러싼 부처 간 충돌이 예상된다.

◇기능분석 착수=정부조직 개편업무를 맡고 있는 행정자치부는 지금까지 제기됐던 문제점과 중복 업무 기능 등을 중심으로 종합보고서를 만들어 차기 정부가 참고자료로 활용토록 할 계획이다.

이 보고서는 부처의 통폐합 등 단정적인 결론은 피하고 부처의 신설 배경과 이유, 장단점, 보완점, 대안 등을 제시하는 선으로 내용을 한정했다.

주요 부처들의 중복기능에 대한 분석은 이미 마무리된 상태다. 통일정책 수립의 경우 청와대·총리실·통일부 통일정책실·외교통상 부 특수정책과·국방부 군비기획담당관이 중복적으로 맡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정책 조정 업무는 재경부 정책조정심의관, 국무조정실 경제조정관, 경제정책자문회의 등이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관여하고 있다.

벤처기업 창업과 경영지원은 중기청 벤처기업국, 산자부 산업혁신과,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정책국, 과기부 과학기술정책실이 중복 담당한다.

대외통상과 교섭업무는 외통부 통상교섭본부, 재경부 경제협력국, 산자부 무역투자실, 복지부·정통부·농림부·해수부의 국제협력 담당관이 제각기 맡아 정책의 일관성이 문제로 제기됐다.

행자부는 이와 함께 그동안 학계와 정치권 등에서 논의된 정부기구의 신설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행자부 민방위본부에 속해 있는 소방업무를 별도의 조직으로 떼내고 외통부에서 통상교섭 업무를 분리하는 방안 등이 그것이다.

◇논의가 뜨거운 경제부처=금융정책과 관련, 금감위와 금감원으로 이분화된 조직을 민간기구인 금감원으로 단일화하는 논의가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다. 금감위는 의결기구로 두되 금감원장이 금감위 의장을 겸하며 금감위원의 업무 보좌를 금감원에 맡기자는 구상이다.

그러나 재경부에서는 재경부와 금감위 및 기획예산처의 기능을 정리해 금융부와 재정부 등으로 바꿔야 한다고 반발한다.

산업정책에서도 산자부와 정통부·과기부를 통폐합해야 한다는 논의가 벌어져 부처 간 신경전이 미묘하게 일고 있다. 해양수산부를 수산과 해운항만 분야로 분리, 각각 농림부와 건교부로 통폐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농림부 등을 중심으로 거론되고 있다.

◇신중론=행자부의 한 고위 간부는 "새 통치 이념과 시대에 맞게 기구를 변화시키기는 쉽지만 정부조직 개편을 권력투쟁의 전리품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무리하게 조직개편을 추진할 경우 조직의 일관성이 흔들리고 공직사회의 동요가 일어나 부정적 효과가 빚어진다는 우려다.

김광웅 서울대 교수는 '새 정부 조직 개편의 방향과 구도'란 주제의 세미나에서 무리한 부처 통폐합보다는 기능의 조정과 탄력적인 운영을 강조한다. 그는 "18조원의 예산을 쓰는 교육부와 예산이 4백여억원에 불과한 여성부의 경우처럼 부처 간의 예산이나 인력 규모를 감안, 규모가 큰 부처에는 복수차관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모든 정책 현안이 대통령비서실을 거치는 현행 구조는 행정기관이 비서실의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비서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안해 내각에 앞서가는 대통령 참모의 역할로 제한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정부조직 개편은 특정 부처가 주도하기보다 1차적으로 부처별로 개혁안을 제출케 한 뒤 이를 대통령 당선자 팀과 기존 정부 팀이 협의해 개편에 착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金교수는 진단했다.

고대훈·정철근 기자

coch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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