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념식 편곡은 싫어 화음도 바꾸며 '창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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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송년음악회에 단골로 등장하는 크리스마스 캐롤과 가곡. 출연 성악가들마다 파트와 음역이 다른 데다 원래 간단한 피아노 반주로 작곡된 것이어서 오케스트라 협연을 위해선 편곡(編曲)작업이 필수적이다. 쉽게 말해 피아노 악보를 오케스트라 악보로 옮기는 과정이다.

악기 편성이 원곡과 달라지거나 메들리로 엮을 때 음악회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바로 편곡이다. 다소 성급한 결론이지만 '21세기는 편곡의 시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KBS 열린음악회에서 가곡·영화음악·뮤지컬을 도맡아 편곡하고 있는 작곡가 김바로(30)씨는 연말을 맞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리허설과 연주를 앞두고 밤을 꼬박 새우는 일도 허다하다.

김씨는 오는 15일 수원에서 열리는 경기도립팝스의 '우리 가곡 대향연'의 편곡을 막 끝냈다. 지난 9일 세종대 대양홀에서 열린'2002 청소년 게임 음악회'에서 프라임필하모닉이 연주한'콜 투 암스''플라스틱스''믹스 매스터'등 게임 배경음악도 김씨의 편곡이다.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상가건물에 있는 김씨의 작업실에선 오선지 더미와 연필·지우개는 찾아 볼 수 없다. 악보를 보여주는 대형 모니터가 달린 컴퓨터 한 대와 키보드(건반),그리고 대형 복사기가 있을 뿐이다. 조옮김이 자유자재로 가능한 프로그램'피날레'덕분에 작업 속도도 빨라졌다. 실제 악기 소리를 스피커로도 들어볼 수도 있다.

"가곡의 경우에도 상투적인 편곡이 싫어 전주(前奏)와 간주(間奏)는 물론 화음까지 과감히 바꾸는 편입니다. 하지만 요즘엔 속도가 붙어 공연 1주일 전에만 부탁을 해도 충분해요."

지난달 27일 영화음악·뮤지컬 하이라이트를 올라 비올라 사운드와 함께 연주한 바이올리니스트 피호영 리사이틀도 김씨의 색다른 편곡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는 최근 영화음악과 대중음악에도 손을 댔다. 신인 가수 '더 네임'의 '널 위한 체념'이 그의 작품이다.

"처음엔 공부로 시작한 편곡이 직업처럼 돼 버렸습니다. 제 작품을 오케스트라로 금방 들어 볼 수 있다는 매력에 흠뻑 빠졌지요. 대학생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한 김씨는 1996년 난파음악제 작곡 부문 대상을 수상한 재원. 편곡으론 이듬해 나온 테너 최승원의 음반'노스탤지어'가 그의 데뷔작이다. 최씨가 KBS 열린 음악회에 출연하면서부터 이 프로그램의 가곡·뮤지컬·영화음악 편곡을 도맡아 해오고 있다.

김씨의 부친 김민랑(61)씨는 경희대 작곡과 졸업 후 신중현 밴드에서 건반을 연주했던 음악인이다. 동생 김슬기(29)씨도 공대를 다니다가 군악대 제대 후 서울예대에서 재즈 피아노를 배웠다. 부친이 운영하던 주부 가요교실이 문을 닫으면서 이곳에 김씨의 작업실과 네 식구의 살림집이 들어섰다.

"대학 1학년때 조미료 광고의 CM과 삼류 영화의 배경음악을 맡기도 했어요. 하지만 뮤지컬·영화음악 CD를 듣고 악보로 옮기면서 편곡을 배운 셈이죠. 요즘엔 '투란도트'등 오페라 악보도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어요."

김씨가 가장 존경하는 작곡가는 영화음악가 존 윌리엄스(70)다. 영화음악이야말로 진정한 현대음악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의 마지막 꿈은 편곡으로 기본기를 갈고 닦아 영화음악 뿐만 아니라 콘서트용 관현악을 작곡하는 전업 작곡가가 되는 것이다.

글=이장직 음악전문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lully@joongang.co.kr

▶1972 서울 태생▶1996 난파음악제 작곡 부문 대상▶1997 테너 최승원 가곡 음반'노스탤지어'편곡▶1999 서울대 작곡과 졸업. 올라 비올라 창단 공연 편곡▶2001 가수 진주 3집, 장나라 1집, 애니메이션'마리 이야기' 스트링(현악합주) 편곡. 소프라노 신영옥 송년음악회 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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