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 전쟁’사우디에 백기 든 블랙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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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베리폰의 암호화된 통신 서비스에 불만을 품은 국가들이 서버 접근권을 요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블랙베리가 보안 문제로 마찰을 빚어 온 사우디아라비아에 백기를 들었다.

스마트폰 블랙베리의 제조업체인 캐나다의 리서치인모션(RIM)이 10일(현지시간) 사우디 정부에 메신저 서비스를 감시할 수 있도록 사용자 코드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그동안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사용자코드를 주지 않겠다던 입장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다. 협조하지 않을 경우 블랙베리의 메신저 서비스를 중단시키겠다는 사우디 정부의 위협이 먹혀든 것이다. 이에 따라 사우디와 마찬가지로 RIM의 서버에 접근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다른 나라들의 요구도 거세질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소식통은 “RIM이 사우디 정부에 블랙베리 사용자의 고유식별번호와 코드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로써 사우디 정부는 자국 내 메신저 서비스를 처리하는 RIM의 서버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사우디는 블랙베리의 메신저 서비스가 테러리스트나 불법 활동에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가 검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RIM으로서는 블랙베리 사용자 70만 명으로 중동 최대 시장인 사우디의 요청을 거부하기 쉽지 않았다.

현재 아랍에미리트·인도·인도네시아·레바논 등도 블랙베리의 암호화된 e-메일 서비스 등에 대한 접근권을 요구하고 있다. 테러 척결에 나서고 있는 이들 국가는 RIM의 이중 잣대를 비판한다. RIM이 미국·캐나다 등 북미 국가와 유럽 국가들에는 암호화된 e-메일 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허용하는 반면 중동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에는 불허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아랍에미리트는 RIM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10월 11일부터 블랙베리의 메신저와 e-메일, 인터넷 검색 서비스를 중단시킬 계획이다. 독일도 9일 보안을 이유로 공무원들에게 아이폰·블랙베리 사용을 금지했다. 유럽연합(EU)도 독일에 앞서 업무용 표준 휴대전화에서 블랙베리를 제외했다.

각국 정부의 사용자 정보 접근 요구에 세계 2위의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RIM은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RIM이 생산하는 블랙베리는 그동안 다른 스마트폰을 능가하는 보안 기능을 자랑해 왔다. 블랙베리에서 전송되는 메시지는 해당 국가의 이동통신 회사 서버가 아니라 캐나다·영국 등에 있는 RIM의 자체 서버를 통해 암호화된 뒤 재전송된다. 이에 따라 통신 과정에서 기업 비밀이 샐 염려가 없다는 이유로 임직원들에게 블랙베리 사용을 권장하는 기업이 적지 않았다.

정보기술(IT) 조사업체인 가트너의 애널리스트인 닉 존스는 “대부분의 국가는 통신을 검열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며 “블랙베리의 최대 강점이 보안성이라는 걸 고려하면 RIM이 블랙베리 사용자의 암호화된 개인적 통신에 대한 접근을 허용하는 건 매우 어려운 결정”이라고 말했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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