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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3년생이 특목고 준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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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울 구로동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 黃모(12)군은 밤 12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든다. 학교 수업이 끝나는 오후 3시부터 '학원 순례'가 시작된다. 영어·수학·글짓기·피아노·바이올린 등 5개의 학원 수업과 학교 숙제를 마치면 보통 밤 12시가 넘는다. 학교 수업시간에는 모자라는 잠을 보충하느라 졸기 일쑤다. 黃군은 "수업시간이 공부 스트레스를 안받고 쉴 수 있는 휴식 시간"이라고 말했다.

요즘 초등학생 대부분은 이렇게 과도한 사교육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8일 충남 천안에 사는 초등교 5학년생이 공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정도로 이제 사교육 과열은 서울 강남 등 일부 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학원 5개는 기본=초등학교 4학년 딸에게 세가지 과외를 시키고 있는 학부모 李모(37·여·서울 강남구 개포동)씨는 최근 학부모 모임에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 교사가 "아이를 하루 몇개 학원에 보내느냐"고 묻자 대부분의 학부모가 5∼6개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방학 때 7∼8개로 늘어난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4학년 아들에게 4개의 학원수업을 시키고 있는 金모(36·여·서울 노원구 상계동)씨는 요즘 심정을 이렇게 밝혔다.

"사정 때문에 학원 수업을 한개만 중단해도 아이 얼굴에선 웃음꽃이 핀다. 하지만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우리 아이가 뒤처지는 게 아닌가 싶어 결국 다시 학원을 찾을 수밖에 없다."

◇체험학습 과외 등장=가족과 함께 다양한 체험활동을 하게 해 인성과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 1997년 도입한 체험학습도 최근 과외 열풍에 변질되고 있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사는 崔모(11)군은 지난 3일 체험학습 전문업체의 인솔에 따라 영어학원 친구들과 함께 경기도 화성으로 공룡알 관찰여행을 다녀왔다. 李군의 어머니 張모(33)씨는 "가족이 함께 움직이려면 번잡해 아예 전문업체에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목동 지역을 중심으로 이같은 체험학습 전문업체가 20∼30개 생겨났다. 가격은 당일 코스가 3만∼3만5천원, 1박2일 코스가 6만∼7만원 선이다.

◇미리 배우기 열기=한국교육개발원이 최근 서울의 초등 5, 6학년생 1천3백2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5%가 한개 이상의 학원 수업을 받고 있었으며, 한개 학년을 미리 배우는 학생도 38%를 차지했다. 학원마다 선행학습 경쟁이 붙어 심지어 초등교 5, 6학년에게 중학 3년 과정을 미리 가르치는 등의 학습 상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외국어고·과학고 같은 특목고 입시나 대입 수시모집 등에서 경시대회 입상 성적을 반영하면서 관련 학원들도 문전성시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수학전문학원에는 지난 여름 초등생 특목고 준비반을 개설하자 정원(15∼20명)의 3배가 넘는 학생들이 몰려 선발시험까지 치렀다. 정일학원 신영 이사는 "특목고 입시준비 연령이 지난해 중1에서 올들어 초등교 3학년으로까지 낮아졌다"고 말했다. 서울대 백순근(白淳根·교육학과)교수는 "과도한 사교육은 자립적 학습의욕을 눌러 오히려 부작용이 크다"면서 "학생의 능력과 수준에 맞는 보완 차원의 과외가 학습효과도 더 좋다"고 말했다.

정용환·김현경 기자 goodman@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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