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개 헌 물건 파는 명품 고물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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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휘황찬란한 샹들리에와 고급스러운 양탄자, 진열대의 보석과 경비원의 눈초리가 반짝반짝 빛을 낸다.

고급 보석상이나 외국의 명품 브랜드 판매장으로 오해하기 쉬운 이 곳은 일본 나고야(名古屋)의 고물 백화점 고메효다. 6층짜리 빌딩의 1∼4층은 보석·시계·브랜드 의류, 5층은 가전제품, 6층은 악기류를 판다.

고메효는 온갖 중고품을 취급하는 중고품 백화점이다. 현재 취급하고 있는 품목만 30만개가 넘는다.

고메효의 비즈니스 모델은 중고품을 사들여 깨끗이 손질한 뒤 30%정도의 마진을 붙여 되파는 전형적인 고물상이다.

기존 고물상과 다른 고메효의 강점은 빠른 회전에 있다. 중고품을 적당한 값에 대량으로 사들여 신속하게 팔아치운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고메효는 7개 부문에 80명의 전문 바이어를 두고 있다. 옛날의 고물상으로 친다면 넝마주이에 해당한다. 넥타이 차림의 현대판 넝마주이들은 연간 11만명으로부터 중고품을 수집하고 있다. 여기서 비결은 소비자들이 매력을 느낄 만한 상품의 발굴과 적정한 가격 결정이다. 이를 위해 고메효의 넝마주이들은 이른바 '8 대 2'의 비율을 철칙으로 삼는다.

첫째, 중고품과 신품의 취급비중을 8 대 2로 한다. 신품은 마진이 적기 때문에 많이 팔수록 회사 전체의 수익성은 하락한다. 따라서 마진율이 높은 중고품의 비중을 늘 80% 이상, 손님을 끌기 위한 구색맞추기용 신품을 20% 이하로 갖춘다.

둘째, 중고품의 구입가격은 팔려는 사람의 80%가 동의하는 수준에서 정한다. 이보다 많으면 비싸게 사는 셈이고 적으면 너무 값을 후려쳐 판매고객을 내쫓게 된다. 이 80%라는 선은 고메효가 오랜 고물상 영업에서 얻은 경험치다.

셋째, 매입한 중고품은 첫 1주일간 20%, 다음 2개월간 80%가 팔려나가도록 한다. 고메효는 2개월이 지나도록 팔리지 않은 물건은 '시체'로 취급한다. 매달 한번씩 진열대에서 '시체'들을 끄집어내 전 바이어들이 모인 가운데 '부검'을 실시한다. 이 자리에서 바이어들은 고물이 왜 팔리지 않았는가에 대해 격론을 벌인다.

1947년 나고야 시장통의 초라한 고물상으로 출발한 고메효는 올해 연간 매출액 2백억엔을 돌파했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yhnam@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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