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추억 들춰낸 형형색색 사랑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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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빛깔은 하나나 둘이 아니다. 어둠을 뚫고 오르는 아침햇살 같은 사랑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발버둥쳐도 바닥까지 빨려들고 마는 늪 같은 사랑도 있다. 누구에게 사랑은 희망이고, 누구에게 사랑은 절망이다. 아이들처럼 순수하기도 하고, 세상의 모든 협잡과 음모를 동원해서라도 쟁취하는 너저분한 것이기도 하다. 무지개 정도가 아니라, 인생의 굽이 길 만큼 다양한 유형과 단계가 있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의 순간에 떠오르는 음악이나 노래도 무궁무진하다. 이를테면 '브레이킹 더 웨이브'.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몸을 학대하고 진흙탕에 내팽개치는 여인에게 바쳐지는 레너드 코언의 '수잰'은 슬픔을 더욱 진하게 만든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 대가로 주어지는 고통과 희생은 코언의 읊조림 위에서 더욱 영롱하게 빛난다.

'러버스 패러다이스-러브 인 시네마'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랑의 테마곡을 모은 편집음반이다. 두 장의 CD로 구성돼 있다. 하나에는 앤디 윌리엄스·레너드 코언·밥 딜런처럼 거장의 반열에 오른 가수들의 노래가 주로 실려 있다. 또 하나에는 맨디 무어와 제시카 심슨같은 요즘의 10대 가수들과 칩 트릭·저니 등 1980년대 록 밴드의 음악이 함께 담겨 있다.

각각의 노래를 고른 확실한 기준을 찾기는 힘들지만, 단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이 노래들의 공통점은 쉽게 가슴에 다가온다는 것이다.

노래들의 면면을 보면 사랑의 빛깔이 어슴푸레 떠오른다.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미시즈 로빈슨'(영화 '졸업')은 캘리포니아의 찬란한 햇살이 반사되는 파란 물빛이다. 토니 베네트의 '잇 해드 투 비 유'('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낙엽이 가득 깔린 뉴욕 센트럴 파크의 조금 바랜 듯한 노란색.

신디 로퍼의 '시 밥'('25세의 키스')이라면 잠시도 쉬지 않고 톡톡 튀는 소녀의 발에 신겨져 있는 핑크빛 스니커스 같은 느낌이 아닐까. 선곡된 노래들 대부분이 감미롭고 달콤한 경향임에도 불구하고, 음반 전체를 듣고 있으면 사랑의 감정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때로는 단지 가수가 바뀌는 것만으로도 색이 달라진다. 도니 오스먼드가 불렀던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제곡 '어 타임 포 어스'를 이 음반에서는 자니 마티스가 부른다. 그래서 청춘의 슬픔이 아니라 인생의 허무함으로 들린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사랑 노래는 블루스다. 이 음반에서는 빌 위더스가 불러주는 '에인트 노 선샤인'('노팅 힐')의 애잔한 흙빛이다. 블루스에는 늘 땀과 노동의 냄새가 흐른다. 블루스로 사랑을 노래하면, 그 사랑에는 살과 피의 흔적이 배어있는 듯하다.

대중문화평론가

lotusid@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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