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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지도자는 이런 것 퓨전사극으로 보여줄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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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드라마 촬영 현장의 PD들은 독오른 짐승 같다. '완벽한 그림'을 잡아내기 위해 눈을 부라리며 살기등등한 목소리로 "컷!""스타-트!"를 반복한다. 김종학(51)PD쯤 되면 거의 맹수다. 그가 나타나면 배우와 스태프가 숨을 죽이는 건 물론 무생물인 소품까지 그의 눈치를 보는 것 같다.

5일 오후 충북 제천시 청풍면 청풍문화재단지 오픈세트. SBS 24부작 주말드라마 '대망'을 위해 제천시가 20억원을 들여 8천여평의 대지에 조선 중기의 저잣거리 등 92채의 한옥을 재현해 놓았다.

'대망'은 '모래시계'의 김종학·송지나(극작가) 황금 콤비가 장고 끝에 내놓은 역작. 시간이나 장소뿐만 아니라 배우의 말투까지 모호한, 이른바 '퓨전 사극'이라는 특이한 형식이다. 돈과 권력을 좇는 인간군상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방식은 여전하다.

산세 좋은 충주호반 옆, 고화질 HD카메라 3대가 한꺼번에 돌아간다. 턱선이 날카로운 김PD의 구릿빛 얼굴은 환한 웃음 속에서도 왠지 목말라 보였다. 무엇에 대한 갈증일까.

"시청자 패턴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걸 절감하고 있어요. 드라마를 보며 생각하는 걸 싫어하게 된 것 같아요."

지난달 12일 첫방송을 탄 '대망'의 평균 시청률은 21%(TNS미디어코리아). '모래시계'로 남자들의 귀가를 앞당겼던 황금 콤비로서는 자존심이 상할만한 수치다.

"물론 송지나의 새 스타일이 독특하긴 해요. 2부의 얘기가 5부로 연결되고, 4부의 사건이 8부에서 풀리는 식인데…. 하지만 늘 똑같은 단선구도로만 가서는 드라마가 무슨 발전이 있겠어요. 이런 부분은 시청자가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1998년 드라마 '백야 3.98'이후 4년만에 다시 나온 현장인지라 작품의 완성도에 대해 아쉬움도 많아 보였다.

"사실 송지나는 남들 열 마디 하는 말을 두 마디로 하는 작가요. 그러다 보니 연기를 정말 잘 하거나 인물에 몰입하지 않으면 대사를 소화할 수가 없습니다. 건방진 얘기지만 옛날에는 이미지만 맞으면 배우는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엔 기본이 안되는 연기자가 너무 많은 겁니다. 그러니 겉도는 느낌도 받고…."

기본기 안된 연기자 많아

그는 냉혈 상인 박휘찬 역을 맡은 박상원의 예를 들었다.

"원래 선한 역만 해온지라 본인도 고사하더군요. 그런데 시켜보니 또 전혀 다른 모습이 나오는 거예요. 그전엔 술을 잘 사서 착한 줄 알았는데, 요즘 보니까 원래 악한 친구인 것 같아요.(웃음)"

'대망'은 그에게 특별한 작품이다. 77년 MBC에 입사, 첫 작품이 82년 '암행어사'였으니까 '대망'은 PD생활 20년 기념작인 셈이다. 마침 제천은 그의 고향이기도 하다. 촬영하다보면 초등학교 동창생들이 떡이며 김밥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그는 '대망'에서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려 했다. 정치의 목적은 권력을 잡는 게 아니라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는 거라면서.

내년엔 영화에도 첫 도전

그가 가장 도전하고 싶은 것은 영화다. 곽경택·장진·윤상호·이광훈 등 데리고 있던 후배 네명이 감독으로 데뷔했지만 정작 자신은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는 "비디오로 보면 자신 있는데, 극장 대형화면은 어떨 때는 공포스러워요. 너무 많이 알아도 저지르지 못하나 봐요"라고 말했다.

지금 시나리오를 검토 중인데 내년 여름 촬영에 들어가면 연말께 개봉할 수 있다고 했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전쟁휴먼드라마로 컴퓨터그래픽을 많이 사용할 것이라는 게 김PD의 귀띔이다.

제천=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인터넷 중앙일보(www.joins.com)에 접속하시면 김종학 PD 인터뷰 및 '대망'촬영현장 스케치 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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