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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람] 한 팔 한 다리 잃은 16세 폴란드 소년 양극점 밟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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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 남극점을 알리는 팻말 앞에서 자넥 멜라(中)가 폴란드 국기를 펼쳐 들고 있다. [카민스키 홈페이지]

"저의 도전기가 전세계 장애인들에게 꿈을 갖고 노력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가 됐으면 합니다."

의수와 의족에 의지하는 16세의 폴란드 소년이 지난해 한해 동안 양 극지(極地) 탐험에 나서 북극점과 남극점을 밟았다. 폴란드 언론과 미 AP 통신 등은 최근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이로써 그는 양극점에 도달한 사상 최연소 탐험가이자 사상 첫 장애인의 영예를 안았다"고 전했다.

인간 승리의 주인공은 폴란드 말보르크 지방의 고등학생인 자넥 멜라. 그는 2002년 7월 1만5000볼트의 고압선에 감전돼 오른쪽 팔과 왼쪽 다리를 잃었다. 그러나 그는 사고를 당한 지 2년이 채 못 된 지난해 4월 24일 북극점을 밟았고, 이어 12월 31일에는 남극점에 도달했다.

멜라의 양 극지 도전에는 폴란드의 유명 탐험가 마렉 카민스키와 사진가 보치에크 오스트로스키가 한팀으로 참여했다. 카민스키(40)는 1995년 사상 처음으로 남극점과 북극점을 한해에 도달했던 탐험가다.

카민스키는 멜라가 불구가 된 직후 그를 처음 만났다. 멜라는 카민스키가 운영하는 자선기금에서 의수.의족을 제공받은 65명 중 한명이었다. 카민스키는 그의 열렬한 팬인 멜라가 자신도 탐험에 나서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그의 꿈을 이뤄주기로 결심했다. 이후 카민스키는 1년여를 함께 지내며 멜라를 훈련시켰다. 극저온에서의 생존법과 의수와 의족에 의존해 암벽을 등반하는 방법 등을 가르쳤다. 멜라는 이 힘든 과정을 묵묵히 다 소화해냈다. 카민스키는 '모두 함께 극지로'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자금을 조달하고 탐험을 준비했다.

카민스키와 멜라는 4월 15일 북극 원정에 나섰다. 노르웨이 스피트베르겐 북쪽의 보르네오 아이스 스테이션을 출발해 9일 간 70㎞를 걸어 북극점을 밟았다.

8개월 뒤인 12월 17일에는 다시 남극 원정에 나섰다. 남극의 패트리어트 힐스 전초기지를 출발해 식량과 장비가 들어있는 썰매를 끌고 2주 동안 200㎞를 걷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멜라는 평균 기온 영하 30도의 혹한과 최고 시속 100㎞ 전후의 강한 눈보라를 뚫으며 얼음 바위와 크레바스 지역을 통과해 나갔다. 2004년의 마지막날 새벽 3시47분, 내내 그들을 괴롭혔던 강풍이 잠시 잠잠해진 가운데 멜라 일행은 마침내 폴란드 국기를 남극점에 꽂았다.

멜라는 "모진 눈보라 속에서 외롭고 두려웠지만 나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왕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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