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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뺀질이’ 집에 보내고, 훈련은 모질게 … 눈빛 달라진 유재학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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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수비 제대로 안 하지!”

날카로운 눈매로 연습경기를 지켜보던 유재학(47) 남자농구 대표팀 감독의 목소리가 태릉선수촌 농구장에 울렸다. 유 감독이 3쿼터 시작과 함께 풀코트 프레스(상대가 공격진영으로 넘어오기 전부터 강하게 달라붙는 수비)를 지시하자 가드 양동근(모비스)과 김선형(중앙대)은 물론 센터 김종규(경희대)까지 선수 전원이 상대를 강하게 압박했다.

남자 농구 대표팀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생존경쟁과 강훈으로 선수들의 표정이 어느 때보다 진지하다. 사진은 9일 태릉에서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는 유재학 대표팀 감독(왼쪽). [이호형 기자]

9일 열린 대표팀과 프로농구 오리온스의 연습경기 장면이다. 대표팀은 오리온스를 크게 이기고도 경기 후 수비훈련을 더 했다. 김동광 프로농구연맹(KBL) 경기위원장은 “이게 바로 농구 대표팀이 달라진 점이다. 선수들 눈빛을 보라”며 웃었다.

대표팀의 키워드는 ‘생존경쟁’이다. 유 감독은 대표팀 소집 초기였던 지난 6월 주전 포워드 김민수(SK)를 가차없이 제외시켰다. 유 감독은 “김민수가 부상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훈련 태도가 성실하지 못했다. 그런 선수는 필요 없으니 짐 싸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프로선수들에게 태극마크는 명예보다 부담으로 여겨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유 감독은 “선수들이 ‘설렁설렁하다가는 망신당하겠구나’라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면서 “아시아 7등(2009년 아시아선수권대회 7위) 팀이 독하게 훈련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11월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대표팀은 금메달이라는 다소 벅찬 목표를 설정했다.

대학 소속의 젊은 선수가 여러 명 선발된 것도 생존경쟁에 불을 지폈다. 스피드가 좋은 김종규와 힘이 넘치는 오세근(중앙대)이 주전 빅맨 자리를 노리고 있다. 올해 대학을 졸업한 가드 박찬희(KT&G)도 선배들을 제치고 이름을 올렸다. 7월 말 발표된 2차 소집명단에는 강병현(KCC)을 밀어내고 대학생 김선형이 들어왔다.

대표팀 붙박이라고 자부했던 프로선수들의 훈련 태도와 눈빛이 달라졌다. 발이 느리고 수비가 허술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규섭(삼성)은 지난달 미국 전지훈련 때 치른 연습경기에서 악착같이 흑인 빅맨을 수비하다 발목을 다쳤다. 신동파 대한농구협회 부회장이 “규섭이가 안 하던 짓 하니까 다쳤다”며 농담을 했을 정도다.

유 감독은 소속팀 모비스 선수들의 경기장 밖 태도까지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귀고리나 염색, 긴 머리는 금지다. 벤치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대표팀도 ‘모범생’이 됐다. 과거 남자농구 대표팀은 다른 아마추어 선수들에 비해 훈련태도가 불성실하다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태릉의 골칫덩이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현 대표팀은 오전 6시 새벽훈련을 꼬박꼬박 소화하고 있고, 다른 종목과도 활발하게 어울린다.

대표팀은 12일부터 미국 LA에서 2차 전지훈련을 하며, 아시안게임 최종 엔트리 12명의 명단은 9월 20일 발표된다.

글=이정찬 기자
사진=이호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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