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알 카에다 창설자 빈 라덴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알 카에다를 창설한 오사마 빈 라덴은 1957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백만장자였던 무하마드의 열일곱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말수가 적고 온화한 성격에 신앙심이 깊었던 그는 14세땐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영어 연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17세때 처음 결혼한 뒤 몇 명의 아내를 더 얻었다고 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일부다처제 전통에 따른 것이죠. 그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게 된 계기는 80년대 소련의 침공에 맞선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 운동이었습니다.

당시 아랍 젊은이들 중에는 스페인 내전 때 많은 외국인이 자원해 국제여단에 가담했던 것처럼 무자헤딘으로 자원해 소련과 싸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대학 시절 원리주의에 빠져든 빈 라덴도 자신의 재산을 쏟아부으며 무자헤딘 모병과 훈련에 깊이 관여했죠. 86년엔 직접 군대를 이끌고 아프가니스탄 동부의 잘랄라바드에서 소련군과 맞서 싸워 전과를 올린 적도 있고요. 그 당시 호스트 지역에 만들었던 동굴 기지는 89년 빈 라덴이 창설한 알 카에다의 본부가 되었죠.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까지만 해도 빈 라덴을 지원했습니다. 냉전 시절 소련과 대립하고 있던 미국의 입장에서는 소련에 맞서 싸우는 빈 라덴은 '적의 적'이었으니 미국 편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하지만 이같은 상황은 91년 걸프전으로 완전히 뒤바뀌게 됩니다. 빈 라덴은 이슬람 성지인 메카 근처에까지 군대를 주둔시킨 미국을 이슬람의 적으로 간주하고 '지하드', 즉 성전(聖戰)을 선포했습니다. 이후 알 카에다가 벌인 대형 테러는 모두 미국을 겨냥한 것이었죠. 특히 98년 탄자니아·케냐 주재 미국 대사관 공격으로 2백34명이 숨지는 사건이 터지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알 카에다 기지를 향해 크루즈 미사일 80발을 퍼붓기도 했지만 빈 라덴은 무사했습니다. 빈 라덴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이 한창이던 지난해 11월 10일 잘랄라바드를 떠나 호스트 동굴기지로 이동한 뒤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현지의 목격자들은 그가 국경 너머 파키스탄 쪽으로 달아났다고 말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