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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서울시장 정책 따져보기] 행정력 80% 개발사업 집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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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수익성을 추구하는 최고경영자(CEO)와 공공이익을 우선하는 시장(市長)은 다를 수밖에 없다. 행정의 실패는 고스란히 시민 몫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서울시에는 요즘 이명박(李明博)식 대규모 실험이 진행 중이다. 李시장의 주도로 단기간에 대형 사업이 쏟아지면서 정치적 배경을 둘러싼 공방도 한창이다. 李시장이 개발계획을 주도해 실무 공무원들의 목소리는 찾기 어렵다. 李시장은 'CEO시장'이라 자칭하지만 '제왕적 시장'이란 비판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李시장의 독주=고건(高建)전 서울시장은 마지막 기자간담회에서 "새 시장 당선자는 정치가나 CEO 색채가 짙은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행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청계천 복원의 경우 일단 작은 하천들부터 복원해 시행착오를 줄인 뒤 시도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高전시장의 진단이 넉달 만에 현실화할 조짐이다.

시는 요즘 민간기업 인력개발원에서 4급 이상 간부직원들에게 특별연수를 실시하고 있다. 경영 마인드를 도입하라는 李시장의 특명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시청 내부에선 "李시장이 먼저 공무원 연수부터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청계천 복원이나 뉴타운 등 히트 상품 개발보다 시민생활과 공공의 이익을 살피는 행정가 자질을 갖추라는 주문이다. 이들은 "서울시는 전통적으로 행정력의 80%를 도시 관리에 쓰고 나머지 20%로 특정 사업을 추진해왔다"며 "요즘은 행정력의 80%를 개발사업에 쏟아붓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국민대 김병준(金秉準·행정학)교수도 "행정은 예산·인원이 한정돼 있어 개발에만 치우치면 시민 생활에 직결되는 도시관리 기능이 떨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李시장의 독주 조짐에 따라 한나라당 일색인 시의회와 구청장들도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이성구(李聲九)시의회 의장은 "개발을 위해 복지·후생·환경 등이 도외시되면 안된다"며 "도심광장이나 청계천 복원은 교통소통에 지장이 있는 만큼 의회 차원에서 제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했다.

시는 민선 구청장들의 선심 행정이 난개발을 초래한다며 올들어 재건축 안전진단 등 개발권한을 대폭 넘겨받았다. 그러나 서울 구청장협의회는 최근 "시가 도시계획 권한을 독차지해 주민들 이해 조정도 못하고 체계적인 지역발전 계획을 수립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주장했다. 개발 승인권과 도시계획 권한을 넘겨달라는 것이다. 한 구청장은 "李시장 혼자만 생색을 내고 설거지는 구청장들에게 떠넘기는 게 아니냐"며 "3연임에 성공해 차기 총선이나 시장 선거 출마를 노리는 구청장들 사이에 불만이 많다"고 전했다.

◇정치적 배경 논란=李시장은 최근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후보는 이회창 후보뿐이라고 말하면 선거법 위반이 된다"고 발언해 선관위로부터 엄중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시장 측근들은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시장 되고 나더니 사람이 달라졌다'며 대선 공헌을 요구하는 한나라당의 압박에서 서울시가 자유롭게 됐다는 것이다.

뉴타운이나 마곡지구 개발도 마찬가지다. 유영(兪煐) 강서구청장은 "李시장의 마곡지구 조기개발 결단으로 서울 서남쪽에서 한나라당 30만표는 굳어졌다"고 주장했다. 서울시가 "통상적인 시정 활동"이라고 하는 대형 개발사업들이 "대선을 겨냥한 무더기 선심 행정"이란 시비를 부르는 것도 이같은 정치적 배경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특히 李시장의 대형 개발사업들은 착공 시기가 내년 중순 이후에 몰려 있다. 또 소각장이나 화장장 등 골치 아픈 사업들은 한결같이 시정운영 4개년 계획에서 빠졌다. 이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는 "장밋빛 정책만 앞세우고 공사에 따른 교통체증이나 주민들이 반발하는 혐오시설은 대선을 넘긴 뒤 손대겠다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실제로 李시장은 취임 초 거스 히딩크 감독과 가족사진 촬영 후 한나라당에서 "대선 전에는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정책으로 당에 부담을 주지 말라"는 요청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다 서울시와 경기도는 최근 대형 개발사업을 앞다퉈 발표하고 있다. 李시장과 손학규(孫鶴圭)지사가 벌써부터 포스트 이회창 경쟁을 벌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정치권에서 고개를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李시장은 이에 대해 "마지막 공직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일만 하겠다" "4년후 시장 재선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지영·박현영 기자

jylee@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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