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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家의 향기'문중 유물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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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종가(宗家)는 망해도 신주보(신주를 모시는 나무 궤의 덮개)와 향로, 향합은 남는다'는 말이 있다. 문벌 있는 선비 가문이 주저앉았다 해도 그 집안의 규율과 지조는 남는다는 걸 이르는 옛말이다.

이는 문중에서 맏이로만 이어 온 큰집은 그만큼 대물림으로 규범과 가치를 전해주는 문화전승의 장이었음을 보여준다.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심우영)이 5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여는 '선비, 그 멋과 삶의 세계'는 이렇게 각 문중에 전해오는 유물들을 통해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삶과 문화를 엿보는 특별 기획전이다.

경북 안동 한국국학진흥원 제 2전시실에 선보인 출품작들은 각 문중에서 소중하게 간직해온 집안의 가보로, 자주 나들이를 하지 않는 까닭에 국학 연구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벼슬을 마다하고 숲에 묻혀 글 읽고 후진 양성에만 애썼던 사림(士林)의 대표적 학자인 '장현광(張顯光) 영정', 조선 후기에 벼슬이 좌의정까지 올랐던 '정탁(鄭琢) 영정', 강직하고 호방한 성품 탓에 30년을 외직으로 떠돌았던 '이현보(李賢輔) 영정' 등이 유학 이념을 이끌었던 선비들의 다양한 모습을 짐작케 한다.

60여점이 출품된 서화와 고문서는 선비들이 벗과 우정을 나누며 나날이 즐긴 예술 세계뿐 아니라 생활상까지 시시콜콜 증언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으로 사신가는 친구에게 써준 전별 시들을 모은 '연행별장'과 '동사별장', 친목 모임이었던 계(契)를 그린 '계회도(契會圖)' 등은 선비 사회에 난만했던 풍류를 읽게 만든다.

특히 풍산 김씨 문중에 내려오는 '세전서화첩(世傳書畵帖)'은 수대에 걸쳐 집안 인물들을 그린 그림 족보이자 가족 앨범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또 농암 이현보 종가에 전해지는 '화산양로연도'는 농암의 풍모뿐 아니라 당시 풍습까지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다. 농암이 안동부사로 재직했던 1519년(중종 14) 가을, 안동부내에 사는 80세 이상 된 장수 노인들을 관아로 초청해 연 성대한 양로연 장면을 담은 이 그림은 신분을 불문하고 여성과 천민까지 초청한 농암의 경로 의식도 좋지만, 내청과 외청으로 따로 마련한 남녀유별의 습속을 기록 사진처럼 전해준다.

이들 전시작은 대부분 안동 인근 문중의 소장품들이어서 관람하고 난 뒤에 바로 관련 유적과 자연을 찾아 나서는 즐거움까지 맛볼 수 있다.

전시를 준비한 김순석 수석 연구원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자칫 훼손되고 멸실 위기에 놓여 있는 유물들을 안전하게 보존하고 기록으로 남기려는 첫 전시"라며 앞으로 해마다 다른 주제로 특별전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이를 위해 28,29일 '국내외 한국학 자료의 보존 실태와 전망'을 주제로 학술대회도 연다. 054-851-0700.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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