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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에 적진 궤멸시킨 이세돌의 묘수 黑6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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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묘수'란 어떤 것일까. 기기묘묘하게 복잡한 것도 묘수라 불리겠지만 수순과 맥이 선명해서 아! 하는 감탄사와 함께 한눈에 척 들어오는 묘수야말로 상급에 속한다. 이세돌3단이 바로 그처럼 깨끗한 묘수 한방으로 KO승한 바둑이 있다.

지난달 29일 한국기원 바둑TV 스튜디오에서 벌어진 KT배 마스터즈 프로기전 32강전, 이세돌3단과 중견 강호 정대상8단의 대결이다. '기보'에서 흑을 쥔 이세돌이 좌상 백진에 뛰어들었으나 유명한 오궁도화(五宮桃花)에 걸려 사망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흑로 따내 응수를 물은 장면인데 외곽의 백은 A나 B로 두면 확실하게 연결된다. 귀의 흑은 수가 길지만 전체 백과의 싸움은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백을 반토막낸다면 싸움은 무조건 흑승이 된다.

정8단은 흑에 백1로 뛰어 응수했는데 나중에 실수로 밝혀지긴 했지만 처음엔 이 수가 A나 B보다 더 근사해보였다.

흑에 절단수가 없다면 백1 쪽이 A나 B보다 더 능률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세돌은 흑6이란 기막힌 묘수를 찾아냈다. KT배는 국내 최대기전이지만 제한시간이 불과 20분인 속기 대결. 게다가 이3단은 마지막 30초 초읽기 한개만 남겨둔 상황이었는데 그 절박한 처지에서도 '올해의 묘수'라 할 만한 깨끗한 맥점을 찾아내 사람들을 감탄케 했다.

"묘수 세번이면 필패"란 말이 있다. 묘수는 어려울 때 등장한다. 묘수를 세번이나 내야 할 상황이면 그만큼 판세가 어렵다는 의미고 그런 바둑은 결국 진다는 역설적인 경구다. 그러나 그건 승부사들의 얘기고 구경꾼에겐 묘수가 즐겁다. '기보'의 흑6 한방에 백은 두동강났고 싸움이 끝났다고 본 정8단은 여기서 돌을 던졌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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