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과 국방]국제규제 없는 분야 先개발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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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5면

우리나라는 사정거리 3백㎞ 이상의 미사일을 외국에서 사 올 수 없다. 그렇다고 국내에서 개발하겠다고 덤비면 선진국들이 관련 기술이나 부품을 일절 팔지도 않는다. 모든 기술·부품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사정거리 3백㎞ 이상의 미사일을 갖는 것은 당분간 '희망 사항'일 뿐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33개 회원국이 가입한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규약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체제에 가입하지 않으면 사정거리 3백㎞ 이하 짜리 개발에 들어가는 기술이나 부품조차 외국에서 조달하기 어렵다. 회원국이 아니면 그나마도 팔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사정거리 5천5백㎞ 이상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중장거리 미사일은 미국·러시아·프랑스 등 기술 선진국이 독과점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세계 무기 수출국 상위에 올라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세계 5위의 무기 수입국이다.

과학기술이 부족해 안보도 외국에 의존하는 꼴이다. 기술 선진국들은 첨단 기술의 경우 국가안보 등 각종 구실을 붙여 후발국에 넘겨주지도, 독자적으로 개발에 나서지도 못하게 한다. 군수·민수기술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 뒤 무기 등 완성품 위주로 팔아 돈을 챙기는 것이다.

이를테면 기술을 앞서 개발한 뒤 미사일기술통제체제나 핵확산금지조약 등을 들어 기술과 시장을 독점하는 형태다. 이는 무기 뿐 아니라 첨단 민수기기 개발에도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리랑 위성 등 인공위성을 개발할 때도 이런 이유로 애를 먹었었다.

핵무기도 마찬가지다.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는 관련 기술 개발에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후발국의 경우 국제기구의 집중 규제 대상이다. 그 한 예가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에 설치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용 카메라다. 핵연료가 외부로 새나갈세라 24시간 감시하고 있다. 이는 핵무기 개발을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사용하고 남은 핵연료 재처리 기술 등 관련 기술까지 개발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과학기술부 조청원 원자력국장은 "민간시장이나 국가 안보나 과학기술이 뒤받쳐주지 않으면 외국에 좋은 일 시키는 꼴"이라며 "기존 기술은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첨단기술에 적극 투자해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보다 먼저 개발해 기술을 선점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의 경우 선진국들이 첨단 무기를 개발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그 중 한가지 기술을 집중적으로 개발한 뒤 그 무기를 도입할 때 협상력을 높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기술을 개발하는 데는 군·민을 가릴 때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국방연구원 무기체계연구센터 박태유 박사는 "미국도 동서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군수기술을 민간과 공조해 개발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체제로 급속하게 전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방주 기자

bpark@

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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